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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0 18:58 수정 : 2008.08.29 16:02

정대세 선수(왼쪽)는 K리그 올스타팀과의 조모컵 경기에서 여러 차례 슈팅을 날렸지만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연합뉴스.

[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자연 속 치유여행을 다녀온 뒤 전투준비 완료!

안녕하세요, 정대세입니다.

지난번 칼럼에 이어, 축구에서 호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칼럼도 파워풀하게 써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름휴가를 어떻게들 즐기고 계십니까? 저는 8월 들어 두 가지 귀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하나는 제이(J)리그와 케이(K)리그 올스타들이 겨룬 조모(JOMO)컵. 또 하나는 짧은 휴가를 이용해 치유여행을 다녀온 것입니다. 둘 다 모두 제게는 최고의 추억을 안겨주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빨리 전해드리고 싶어선지 펜이 술술 잘 나갑니다.

K리그 올스타, 기합이 들어가 있더라

텔레비전으로 보신 분도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역시 먼저 조모컵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실제로 시합을 끝내고 느꼈습니다만, 축구선수로서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프로축구 선수라고 해서 누구나 다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포워드(FW)라는 포지션으로 출장하는 건, 실력은 물론이고 운도 필요합니다. 더욱이 올리베이라 감독이 제이리그의 수많은 포워드진 중에서 아직 미덥지 못한 기술과 근성만으로 볼을 쫓아다니는 저를, 단 3명만 뽑는 대표 포워드의 한 사람으로 선택해주신 데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소(초등)학생 무렵부터 오로지 조선대표만을 목표로 축구를 해왔습니다만, 일본에서 사는 이상 티브이로나 잡지로나 친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제이리그였습니다. 1993년 5월15일 제이리그가 화려하게 개막했을 때 저는 키도 작고 빼빼 마른데다 새까맣게 탄, 제이리그를 동경하던 소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나고야 그람파스의 붉은 유니폼, 서포터로 초만원인 녹색 잔디 스타디움이 떠오릅니다. 경기를 보러 갈 때마다 제이리그 유니폼을 부모님한테 사달라고 졸라서는 거기에 붙어 있는 ‘J’라는 기장을 보며 언젠가는 저도 꼭 그것을 붙이고 축구를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8월2일은 그토록 동경했던 제이리그 팀에서 플레이를 하면서, 마침내 제이리그 대표로서 국립경기장에 서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개무량했습니다. 실제로 뽑혔다는 얘길 듣고도 둔감하여 그땐 잘 몰랐는데, 시합 전날 공식연습 때에야 비로소 생생하게 실감했습니다. 일본대표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면면들 중에서 저는 태연을 가장하며 평소보다 더 당당한 태도를 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은 스타팅 멤버로 뽑혔고 게다가 현역 한국대표 주장인 미더필더(MF) 김남일 형과 함께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돼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케이리그 올스타는 경기 사흘 전부터 전체 연습을 할 정도로 기합이 들어간 분위기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원한 라이벌을 만나니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겠지요. 시합 전에 케이리그 올스타의 통역으로 동행한 지인을 통해서도 상당히 기합이 들어가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틀림없이 해볼 만한 좋은 경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 당일 여러 번 찬스가 있었건만 제 슈팅은 골로 연결되지 않고 계속 빗나갔습니다. 여러 매체들이 결정력 있는 포워드로 저를 소개해준 걸 생각하면 용서라도 구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골을 내야 할 때 내지 못한 팀에겐 반드시 반동이 돌아옵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전개됐습니다. 전반 종반에 1점을 내주었으나 후반전에는 페널티킥 찬스를 얻어 단숨에 동점을 만드나 했는데 또 실축. 그 뒤 연거푸 2점을 먹고 투리오(브라질 이민3세로 우라와 소속) 선수가 1점을 만회했으나 이미 따라붙기엔 늦어 그 상황 그대로 종료 휘슬이 울렸습니다. 결과는 3 대 1 참패였습니다. 아무리 공식전이 아니었다고 해도 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자신의 무기력을 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열릴 예정인데, 다시 선발될 수 있기를 빌면서 노력하겠습니다.


8월1일 밤에 열린 조모컵 전야제 행사에 참석한 정대세(앞줄 왼쪽서 두번째)선수. 정대세 제공.
북적대는 바다보단 계곡 캠핑이 더 좋아

그리고 그런 분한 마음과 싸움의 상처를 다스리기 위해 연휴 기간에 1박2일 동안 친구와 하코네를 다녀왔습니다. 하코네를 잘 모르는 한국분들을 위해 약간 설명을 하겠습니다. 하코네는 일본의 수도 도쿄 아래쪽에 있는 가나가와현 한쪽에 있습니다. 하코네는 일본에선 누구나 아는 유명한 온천 명소로, 조용하고 숲이 많은 곳입니다. 도쿄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려 일반인부터 각계 저명인사나 연예인, 스포츠 선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휴양하러 가는 장소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여름에 관해 산보다는 바다 이미지를 더 많이 갖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산속에 텐트를 치고 캠핑하면서 계곡물에서 노는 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산골에서 자라서 산 놀이에 관해서는 전문가거든요. 우리 가족은 여름만 되면 산이나 냇가로 놀러갔습니다. 그런 제가 고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바다에 간 적이 있습니다. 여름이니 당연했겠지만 바다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바닷물은 더러운데다 선크림 병과 쓰레기들이 해면 위를 떠다녀서, 역시 물 좋은 냇가가 좋다는 생각을 하며 그냥 돌아와버린 기억이 납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고들 합니다만 깨끗한 계곡 상류에서 은어낚시를 하는 아버지, 그 모습을 행복한 듯 지켜보는 어머니, 바위 위에서 냇물 속으로 뛰어내리며 ‘히히닥거리는’ 우리 형제. 뭐라 말할 수 없이 행복한 풍경이 떠오릅니다. 언제까지라도 아버지가 건강하셔서 손자가 나면 손자들한테도 산과 계곡 놀이를 가르쳐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 어릴 적 아버지 덕에 얻은 체험을 떠올리면서 이번에 하코네를 여행지로 선택한 겁니다. 점심 때를 넘겨 하코네에 도착한 뒤 먼저 고픈 배를 채웠습니다.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하코네 거리를 산책하며 가게를 찾았더니 고풍스런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그 가게들도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중에서 하코네 명물인 소바(메밀국수)가게를 낙점. 배를 채웠으니 이젠 여관으로. 제 포상금으로 약간 비싼 여관을 예약했습니다. 체크인하고 3층 방으로 가서 문을 열었더니, 넓기도 해라! 그리고 순일본식 방으로 꾸몄는데, 더 안쪽에 가 보니 그 방 전용 노천탕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거기서 바라보는 경치는 도회의 번잡함을 완전히 잊게 만들었는데, 푸르디푸른 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고, 그 앞에는 장대한 산이 가로막고 선 느낌. 그런 자연 속의 치유는 바로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심신 회복 뒤 생각한 것은 오로지 축구뿐

저는 전날의 피로 때문에 좀 눕고 싶었을 뿐인데 그만 완전히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아까워라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질녘이어서 산과 산 사이로 태양이 막 넘어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원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아 기분 좋게 나른한 가운데 멋진 노을을 느긋하게 바라봤습니다. 도회에선 볼 수 없는 풍경과 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 새와 벌레들 우는 소리 등 자연의 비지엠(BGM·배경음악)이라는 최고의 연출과 함께 심신이 치유되는 걸 손으로 만지듯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잊은 채 그저 아름다운 경치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번화한 곳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노는 것도 좋지만 이런 재충전도 좋지 않을지, 여러분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이번에 하코네에 와서 상상한 것 이상으로 충분히 휴식하면서 몸을 다스리는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심신 모두 회복된 뒤 생각한 것은 오로지 축구뿐. 중반을 넘어 뒷심을 내야 할 지점에 당도한 우리 가와사키 프론탈레, 그리고 뭐라 해도 중요한 월드컵 예선. 쓰나미(해일)처럼 밀려오는 이 싸움을 위한 준비를 확실히 했습니다. 전투준비 완료!

그리고 여러분과 헤어지기 전에, 기쁜 일이 하나 있으니 들어주세요.

조모컵 시합 전날 한-일 두 나라 선수와 관계자들이 모여 식사를 함께하는 전야제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한국 관계자분이 “칼럼 매번 잘 보고 있어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처음으로 칼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예상한 것보다 더 기뻤는데, 실제로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힘이 솟았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대세 조선 축구대표팀 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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