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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03 19:08 수정 : 2008.09.10 15:04

체력단련을 할 때 자메이카 달리기 선수 볼트를 살짝 흉내내 보았다. 그 결과인지 J리그에서 두 시합 연속 골을 넣었다.

[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뜨거웠던 올림픽을 마음껏 즐기고 9월10일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전을 준비하는 마음

안녕하세요?

기온이 뚝 떨어져 지내기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여름 끝자락의 애절함 같은 게 떠도는 오늘입니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은 어떠한지요? 모두 즐거운 여름 추억을 만드셨나요? 일본의 올해 여름은 몹시 더워서 폭염 일수가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항상 바깥 생활이 많은 인생이지만 해마다 기온이 올라가는 걸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로 점점 기온이 올라가 장차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불안과 걱정이 앞섭니다. 저는 사소하지만 집을 나올 때 전기 차단기를 내리고 에어컨 설정온도는 섭씨 28도에 맞춰 친환경적으로 생활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지구를 위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함께 협력합시다.

박태환과 메시의 활약에 감동 또 감동

하지만 뜨거운 열기라면 역시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 베이징은 시차가 1시간이어서 수면 부족에 빠지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매달려 세월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또 4년 뒤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고 왠지 허망한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아테네에서 베이징까지 4년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여러 문제를 안고 있긴 했지만 중국이 총력을 기울여 올림픽을 치러냈다는 느낌을 받아 감명 깊었습니다. 일본의 텔레비전에서는 대체로 일본 선수가 출장하는 시합밖에 방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경기는 인터넷을 통해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조선은 메달 6개, 한국은 31개로, 작은 조선반도에서 37개의 메달을 획득했다는 건 그야말로 가슴 벅찬 당당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중국에 이어 메달 획득수 2위를 기록했는데, 남북이 통일된 상태에서 올림픽을 치렀다면 더욱 놀라운 힘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 떠오른 종목의 하나가 수영입니다.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 선수가 8관왕이 된 것도 멋진 일입니다만 한국의 박태환 선수가 400미터 자유형에서 한국 최초의 금메달을 딴 건 감동적이었습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축구에서는 아시아세가 아쉬운 결과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특히 기대했던 조선 여자축구는 불운하게도 그룹 덕을 보지 못하고 석패. 남자축구는 한국과 일본 모두 예선 탈락하고 아르헨티나의 연승으로 끝났습니다만 일본의 시합을 보면서 다시금 세계와의 격차를 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시 선수의 올림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그의 활약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21살의 젊은 나이에 확고한 올림픽 대표로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모습은 정말 빛났습니다.

많은 경기 중에서 나를 가장 흥분시킨 것은 역시 육상 100미터 달리기였습니다.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 선수! 피부색 좋고 퍼포먼스도 좋아 나와 약간 같은 분위기를 풍겼습니다.(하하) 올해 육상은 자메이카 일색의 이미지였습니다. 영장류의 한계를 뛰어넘은 놀라운 스피드는 압권이라는 말 한마디로 충분합니다. 골인 직전에 두 팔을 벌린 여유 있는 표정. 전세계 사람들의 기대대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 더욱이 200미터에서도 금메달.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스포츠선수는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덧붙여 보는 사람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퍼포먼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최고의 엔터테이너. 그런데 이 볼트 선수도 저보다 젊은 22살이라는 데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볼트의 달리기 방법을 살짝 훔쳐내다

그리고 볼트 선수의 그 금빛 신발이 몹시 탐났습니다.(하하) 빨리 달리기 팀에서 체력단련(피지컬 트레이닝)을 할 때 볼트 선수의 주법을 흉내내 보았더니… 스피드가 부쩍 올라가는 느낌이…. 인류 최고속도의 볼트 선수한테서 달리기 방법을 살짝 훔쳐냈습니다. 그 결과 제이(J)리그에서는 2시합 연속 득점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볼트 선수, 감사합니다.

돌이켜 보면 23살의 펠프스 선수, 22살의 볼트 선수, 21살의 메시 선수, 그리고 곧 20살이 될 박태환 선수, 묘하게 한 살 차이로 죽 이어집니다! 저보다 젊은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겁니다. 저보다 나이가 아래지만 위대한 이들 선수에게 지지 않고 더욱 위를 바라보며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축구선수가 돼야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이처럼 4년에 한 번인 올림픽을 마음껏 즐긴 정대세였습니다.

제이리그 제22차전에서 자칭 로베르트 바조 선수를 이미지화한 트랩 슛으로 골을 넣는 등 상승무드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저를 기다리는 건 ‘2010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입니다. 아시아 3차 예선에서 돌아왔을 때는 갑자기 컨디션 난조로 팀 선발에서 제외됐고 2개월 이상 득점하지 못한 채 굴욕적인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개월 반이 지나는 동안 자주적 트레이닝을 거듭해 지금은 선발출장의 자리를 다시 꿰찼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득점도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대표전을 맞이하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첫 대전인 9월6일의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싸움에선 3차 예선의 옐로카드가 누적돼 출장할 수 없기 때문에, 9월10일의 한국전부터 출장하게 됩니다. 저도 한국과의 대전은 올해 들어 조모(JOMO)컵까지 포함해 이것으로 벌써 5번째입니다. 슬슬 결판을 내지 않으면 찝찝하겠지요, 여러분. 지금의 상승 무드라면 어쩐지 내가 무슨 일을 낼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한국전도 제3국 상하이에서 열리게 됐습니다. 그쪽에 가야 하는데 이동하는 걸 즐기는 터라 장소에는 구애받지 않겠다고 전향적으로 생각합니다만 남북이 자유롭게 공을 차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최종예선에 임하며 정신통일을 위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저는 축구에서, 또한 인생의 터닝포인트에서 “운이 좋다”는 얘길 무심코 내뱉습니다. 그런 얘길 입 밖에 내면 운이 달아나버린다는 얘길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정반대입니다. 입에 올리면 올릴수록 운이 내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어 입버릇처럼 얘기합니다.

하지만 운이 좋다는 것만으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원이나 가르침도 저를 키워주는 요소입니다. 축구에서 지원받는다는 게 어떤 거냐면… 가족 50% + 은사님 40% + 팀 동료20% - 자기자신 20% 같은 겁니다. 이런 요소들이 균형을 이뤄야 축구를 잘 해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은사님과의 관계는 인생의 영원한 재산입니다. 오늘은 축구를 계속해오면서 많은 질책을 하고 인생의 궤도수정을 해준 은사님한테서 배운 걸 좀 써보겠습니다.

대학 시절 라커룸의 문짝을 걷어찬 뒤 …

저는 공을 잡게 되면 돌진하는 것밖에 모르는 성미가 급한 자입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감독, 코치한테서 몇 번이나 폭탄을 맞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고교, 대학 시절에 그랬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경고를 받았을 겁니다. 한번은 대학 3년 때 간토(관동)대회(간토에 있는 대학이 각 도와 현의 대표를 내고 싸우는 축구대회)에서 옐로카드를 2장이나 받고 퇴장당한 적이 있습니다. 화가 나고 분이 나서 어쩔 줄 모르던 저는 운동장에서 나와 라커룸으로 내려가 문을 힘껏 걷어차 버렸습니다. 문은 움푹 찌그러졌습니다. 흥분해서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도 없이 유니폼을 벗어던진 채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는데 감독이 다가왔습니다. 감독의 얼굴을 보고 이제 얻어터지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감독은 차분한 목소리로 간단히 충고를 한 뒤 벤치로 돌아갔습니다. 예상외의 사태에 일순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 내가 한 짓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고, 아직 운동장에서 애쓰는 팀 동료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나중에 감독이 제 성격을 이해하고 야단치지 않았다는 사실, 시설 담당자에게 머리 숙여 사죄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못난 짓을 수없이 저지르고 수없이 반항을 했을 겁니다. 은사님들은 자신의 뼈를 깎아 노력하고 때로는 질타하며, 또 때로는 부드럽게 가르치면서 선수를 길러내기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지요.

은사님들한테서 배운, 제가 제일 좋아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면서 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야스리다”라는 말입니다. 야스리는 물체의 표면과 마찰해서 까칠해진 부분을 매끄럽게 만들어줍니다. 날카로운 손톱 발톱을 부드럽게 갈아주기도 합니다. 다이아몬드도 갈아야 빛이 납니다.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시작해 대학, 가와사키 프론탈레 등에서 만난 은사님들은 저를 사정없이 달리게 만들었고 야단치고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제 결점을 바로잡고 좋게 다듬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질타를 당하면 당할수록 연마되어, 원석에서 끝없이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로 바뀌어가는 것이지요. 그런 은사님들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흘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급한 성미는 옐로카드 숫자로 드러나게 되지요. 저는 다이아몬드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축구선수 정대세(24)가 일본 신주쿠 거리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고 있다.
10개월에 걸친 열전을 기대하세요

이제부터는 지금의 은사님, 그리고 또 새로 만나게 될 은사님들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겸허하게 하루하루의 연습뿐만 아니라 중요한 시합에도 반영해가려 합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인생의 야스리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을 고쳐먹고 싶을 때, 이 말을 떠올립니다. 여러분도 참고해 주세요.

다시 월드컵 얘기로 돌아갑니다만, 지금부터 시작되는 약 10개월에 걸친 8개 시합 열전. B그룹은 5개 팀 중 중동 팀이 3개로, 원정하기도 만만찮은데 컨디션 관리, 마인드 컨트롤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가을이 훨씬 일찍 찾아온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환절기에 몸조심하세요. 그럼, 9월10일 시합에서 만나요. 기대해주세요.

정대세 조선 축구대표팀 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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