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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의 추억을 함께 만든 조선대 축구부 특설반 친구들. 맨 왼쪽의 멋쟁이가 나, 정대세다. 정대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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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내 청춘을 보낸 조선대학교 체육학부-축구팀 동료들과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국은 14일이 추석이었지요? 어떻게 보내셨나요?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은 여덟 시합 중 벌써 두 시합이 끝났습니다. 옐로카드 누적으로 결장한 9월6일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는 조선 대표팀이 2 대 1로 승리했습니다. 9월10일 상하이에서 열린 한국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승부는 한 골씩 주고받으며 아쉬움을 남겼고요. 결판을 또 내년 4월1일 서울로 미루게 됐습니다. 그래도 조선 대표팀의 시합 내용이 좋았고, 나로서도 다시 한 번 크게 성장한 시합이어서 만족스럽게 일본에 돌아왔습니다. 홍영조 선수와의 관계 덕분입니다.
근황 보고- 홍영조 선수와의 관계 반전
대표팀에는,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홍영조 선수라는 스트라이커와 자신이 반드시 스트라이커가 되고 말겠다는 정대세가 있습니다. 저는 그라운드의 주역이 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한 선수입니다. 홍영조 선수처럼 스피드와 테크닉으로 돌파해 가는 선수와의 호흡 맞추기는 무척 힘들고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다른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기보다는 제가 득점을 해서 팀을 이기도록 만들겠다는 데 너무 집착해 찬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고 봅니다.
또 한국이나 일본과의 대전 때는 주목을 받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합이 들어가 축구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언론 등에 신경을 쓴 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기에 이번에는 자신의 점수에 신경 쓰는 개인 플레이어가 되기보다는 100% 팀의 승리를 먼저 생각하고 헌신적으로 플레이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홍영조 선수처럼 훌륭한 스트라이커가 빛날 수 있도록 플레이를 하는 것도 제가 할 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약간 입장을 바꿔 생각하거나 자신이 한 발짝만 양보해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제가 얼마나 제멋대로였고 내키지 않은 일은 외면해 왔는지 통감했습니다. 그리고 팀에 스트라이커가 몇 명이 있든 그 스트라이커들을 살려주는 주변 플레이가 있어야 비로소 스트라이커가 스트라이커다운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조선 국가대표팀의 지금 전술을 통해 앞으로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다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합이었습니다. 간단한 근황 보고였습니다.
오늘은 ‘대학생 시절의 정대세’를 약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청춘을 다 보낸 조선대학교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조선대학교는 재일 조선사람이 공부하는 대학입니다. 해외에서 초급학교(소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민족교육 체계를 확립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일이지요. 조선대학교는 조국과 민족의 미래와 재일동포 사회의 각 분야를 맡아 이끌어 가는 유능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1956년 4월10일 창립됐습니다. 지금은 약 1천명의 재학생들이 다닙니다.
조선대학을 얘기할 때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일본 수도 도쿄의 한적한 무사시노 일각에 있는 ‘전료제’(全寮制·전원 기숙사 체제) 대학이라는 점입니다. 학부는 정치·경제, 문학·역사, 경영, 외국어, 이공, 교육, 체육, 단기학부 등 매우 다양한 8개. 저는 물론 체육학부 출신입니다. 그리고 장차 축구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축구부 특설반’에 소속돼 축구와 공부와 놀이와 연애 조금, 뭐 그런 생활을 보냈지요. 고교 졸업 때 축구 실력이 따르지 않아 부모님·선생님과 상의한 결과 프로에 들어가기보다 진학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대학에 갈 양이면 소학교부터 죽 다닌 조선학교에서 끝까지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조선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온갖 희망을 품고 대학의 문을 들어갔지만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방은 4~5인용으로 개인 공간은 오직 침대뿐. 게다가 입학한 뒤 3개월은 빨리 익숙해지도록 3학년 선배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합니다. 식사는 정해진 메뉴를 정해진 시간에 식당에서 끝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 3회의 목욕, 나머지는 코인 샤워(동전 넣고 하는 샤워), 세탁은 코인 세탁(동전 넣고 하는 자동세탁) 등등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하지만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 조선대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즐겁기만 했습니다. 특히 내가 좋아한 풍경은 수업에 임하는 모습입니다. 남자는 블레이저 신사복으로 정장을 하고, 여자들은 다리미로 예쁘게 주름을 잡은 짙은 감색 치마저고리(제복)를 차려입은 모습이 정말 산뜻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기분이 됩니다. 주3회 목욕, 코인샤워, 코인세탁…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매일 아침 자기 교실로 갑니다. 제가 소속됐던 체육학부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유감스럽게도 여자는 1~4학년생 모두 해서 5명 정도밖에 없습니다. 우리 반은 남자 14명과 여자 2명 해서 16명. 경영학부 등에 비하면 사람 수가 3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그만큼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사귈 만한 좋은 학부였습니다. 체육학부이니만큼 수업은 일반 교양과목은 물론 전문분야에서는 체육이론, 스포츠 심리학 등 이론 계통에 덧붙여 기계체조, 골프, 럭비, 테니스 등등 스포츠 전반을 공부합니다. 실습도 충실히 합니다. 다른 학부에서는 절대로 체험할 수 없는 것들뿐이죠. 특히 인상에 남는 일은 1학년 때 구주구리(九十九里·지바현 동부해안 지역명)에서 한 2시간짜리 장거리 수영과 2학년 때의 30㎞ 마라톤입니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우리 반원 모두와 선생님이 1주일 동안 숙박하면서 바다에서 보낸 실습입니다. 바캉스 기분으로 출발했으나 실은 가혹한 실습이었습니다. 바다에 가기 전 2주일을 꼬박 연습하고 태평양 대해에서 두 시간 헤엄을 치는 것입니다. 저는 수영은 잘하는데 바다 깊은 곳은 질색입니다. 왜냐고요? 그건 바다에 사는 생물 중에 무서워하는 놈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어입니다!! 바다 깊은 곳에서 상어가 접근해 와 덮치면 어쩌지 하는 생각만 하면 공포로 오싹해집니다. 먼바다로 나가면 나갈수록 신경이 쓰여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장거리 수영은 체육학부에 입학한 뒤의 첫 행사입니다. 모두 마지막까지 열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해내자고 약속한 뒤 출발했습니다. 초기에는 모두 즐기면서 헤엄칩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말이 없어지는데, 그날은 파도가 높았고 먼바다 쪽으로 가면 갈수록 수온도 내려가 모두들 서서히 기력을 잃어 갔습니다. 그리고 물속에서 에너지 보급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배를 타고 유도하는 선생님이 우리에게 엿(사탕) 봉지를 뿌려주는데 우리는 마치 던져주는 먹이를 본 잉어처럼 필사적으로 거기로 헤엄쳐 가서 붙잡고는 봉지를 뜯어 꺼내 먹는 식입니다. 염분이 많은 바다 속에 있기 때문에 엿이 정말 달고 맛있습니다. 마침내 무사히 두 시간의 수영을 끝내고 육지에 올라오면 몸무게가 5배 정도는 늘어난 듯 느껴지고 걷는 법을 잊어버린 듯 좀체 걸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옛날 옛적에 물속에서 뭍으로 올라와 진화해 간 생물들이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하하) 클래스메이트 16명 중에서 한 사람의 탈락자도 없이 일렬로 리듬을 맞춰 가며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데서 대단한 성취감을 느꼈고, 반원들이 하나가 된 걸 실감한 실습이었습니다. 바다수영에 마라톤, 가혹하다 가혹해^^ 다음은 30㎞ 마라톤. 이 실습은 학부의 행사로 하는 게 아니라 빵빵한 일본의 마라톤대회에 정식으로 신청해서 참가합니다. 수업 중에 트레이닝을 계속해 가는데, 10~20㎞를 1시간 반 안에 달립니다. 그런 수업이 있는 날도 오후의 축구부 연습이나 체력단련에 절대로 빠질 수 없습니다. 정말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완주의 성취감을 느낀 뿌듯한 마라톤 실습이었습니다. 학부 시절 추억 외에는 역시 축구부의 동료들, 특히 ‘축구부 특설반’ 동급생 6명의 만남이 큽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반은 각기 출신 학부가 다르지만 장래에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만 들어가는 반입니다. 왠지 마음을 여는 게 잘 안 되는 나이지만 6명이 함께 있을 때는 자연히 솔직해질 수 있었습니다. 각기 개성이 달라도 역시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요. 순수하고 솔직담백한 성격, 축구에 미친 5명 속에 저도 자연스레 녹아들었습니다. 축구부에서는 함께 땀을 흘리고 상담도 했습니다. 다투기도 했습니다. 휴일에는 볼링을 하고, 가라오케, 동물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스포츠 선수로서 항상 몸 단련에 신경 쓰고 있던 우리는 술을 삼갔고, 특히 담배는 전혀 피우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가장 즐겁고 의미있는 추억입니다. 단신으로 한국에 건너가 내셔널리그(노원 험멜)에서 11번 등번호를 단 상덕, JFL제프리잡스에서 축구를 계속하는 정욱, 조선학교 교원으로 축구부 감독을 하는 태영, 아프리카에 어학 유학 중인 경재, 잡지 출판사에서 일하는 재령. 모두 각기 자신의 인생을 필사적으로 살아가지만 마음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같은 축구선수로서 꿈을 좇아 최선을 다하는 상덕이와 정욱이는 좋은 라이벌이기도 하고 진짜 ‘동지’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활약 소식을 들으면 저도 힘이 나듯이 제 활약을 보고 그들도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평생 함께 가고 싶은 친구들입니다. 친구들의 생일날 힙합을 선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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