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10.08 19:20 수정 : 2008.10.12 13:39

어렸을 적 유일하게 좋아했던 과외공부는 수영교실. 맨 오른쪽 발바닥을 내민 장난꾸러기 어린이가 나, 정대세다. 정대세 제공

[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피아노, 가라테, 영어… 과외수업에 바빴던 어린 시절, 수영강사에게 선수 제안받기도

안녕하세요.

요즘 사뭇 서늘해져서 가을이 찾아온 걸 느끼는 정대세입니다. 뭐라 해도 제일 좋은 건 쿨러(에어컨)를 켜지 않아도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겁니다. 여름엔 쿨러를 켜지 않고는 더워 잘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켭니다만 역시 쿨러로 쉽게 식힌 몸으로 연습을 하면 몹시 고달픈 점이 있습니다. 쓰러질 것 같거나 음식이 목구멍을 넘어가질 않거나 해서 컨디션 조절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냉기는 만병의 근원이므로 여름에 쿨러 바람을 너무 많이 쐬지 않도록 신경써야 할 뿐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될 계절에는 많이 껴입어서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한국에 흔한 온돌 같은 것이 일본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과외공부에 대한 기억 “정말 싫어”

매년 이 계절이 되면 생각하는 건 오픈카를 타고 기분 좋게 드라이브나 했으면 하는 겁니다. 요즘은 전철을 타기보다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자동차가 필수품이 됐습니다. 그런 정대세, 축구 외에 바라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6년간이나 그리던 자동차를 마침내 손에 넣게 됐습니다. 제 플레이처럼 파워풀하고 와일드한 이미지의 차입니다. 조만간 또다른 기회에 여러분에게 사진과 함께 보고해 올리겠습니다. 이 차가 가져다 준 행운 덕분에 9월27일의 리그 제27라운드 가시와 레이솔 전에서는 두 골을 차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J리그 득점 랭킹도 3위로 호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남은 시합은 7게임입니다. 팀 승리와 저의 득점 랭킹 상승을 위해 돌진해 나가겠습니다. 올해 마지막 대표전, 이란과의 싸움도 물론 잊지 않고 있습니다. 10월15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저의 어릴 때 과외공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어릴 때의 괴외공부 영향이 지금의 정대세를 만드는 데 과연 어떤 역할을 했을지 수수께끼입니다만… (하하)

누나, 형, 그리고 저로 이어지는 정씨 가문 형제는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의 권유로 몇 가지 과외공부를 했습니다. 과외공부에 대한 저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정말 싫어”라는 인상밖에 남는 게 없습니다. 정씨가의 형제 중에서 무엇을 하든 최고는 항상 누나입니다. 공부든 운동이든 뭐든 최고인 누나는 어린 마음에 천재로 보였습니다. 소(초등)학생 시절의 저는 수업 중에도 발 밑에는 축구공이 있었고, 수업 종료 종이 울리면 10분간 쉬는 시간에도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쫓아다녔으며, 청소시간에도 뛰어다녔고, 급기야 홈룸(학급 자치회)이 끝나고 하교시간 마지막까지 뛰어다니며 교복이 흙투성이가 된 채 전철을 타고 흔들리다가 “다녀왔습니다~” 소리와 함께 겨우 집에 당도하는 식이었습니다. 이처럼 한시도 얌전할 날 없던 소년에게 과외공부라니, 어머니도 어지간히 스파르타식이었던 모양입니다!(하하) 이런 얘길 하다니 죄송하군요. 그게 다 어머니의 애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친 피아노가 음악을 가르쳐줘

제가 어떤 과외공부를 했을까요? 여러분 궁금하시지요. 우리 형제에겐 당연한 듯한 생활이었으나 꽤 놀랄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학습 분야에서는 영어, 주산학원. 스포츠에서는 수영교실, 가라테, 스키교실. 예술 분야에선 피아노에 그림교실. 재미있는 건 간부양성교실이라는 게 있어서 나가노현에서 15일간 합숙을 했는데, 거기에 참가한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해낸 것만 이 정도인데, 어머니께 여쭤보면 더 많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축구는 유치원 무렵부터 배웠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과외공부를 한 셈이지요. 성인이 된 지금보다 일정관리도 엄격해서 바쁜 나날을 보냈을지도 모릅니다.(하하) 또 누나는 3살 위, 형은 1살 위로, 우리 형제는 나이 차가 많지 않아서 학교도 함께, 과외공부도 함께였습니다. 그 때문에 선생이 우리 집에 와서 하는 과외공부 외에는 매번 어머니가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통에 우리 형제보다도 어머니가 더 바빴을 겁니다.


배울 때는 싫어했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을 키워준 피아노 레슨. 정대세 제공
과외공부는 주로 유치원 때부터 소학교 6학년 정도까지 계속했습니다만, 축구 다음으로 오래 계속한 것이 피아노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3살 무렵부터 16살까지 10년 이상 계속했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학교의 부(部)활동이 없기 때문에 피아노의 날이었습니다. 유일한 부활동이 휴일에 바로 집에 돌아가 피아노를 치는 것이었는데, 정말 싫었습니다. 우리 집 자랑거리인 그랜드피아노로 누나, 형, 그리고 저의 순으로 레슨을 받았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제가 싫어하니까 딱 30분간만 했습니다. 소학교 시절에는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막과자집에 들르거나 게임방에 가서 놀았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고 싶은 나이여서 피아노 레슨이 정말 너무 싫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5살, 10살 때는 발표회에도 나가, 그때 찍은 사진이 우리 집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싫어했던 피아노 레슨이었으나 자연히 몸에 익어 지금은 음악을 몹시 좋아합니다. 휴일에는 찍어 두었던 시디(CD)가게에 씨디 탐색을 하러 가는 게 취미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고, 홈 디제이(DJ)도 하고 있습니다. 시합 전에도 저 나름의 정신통일을 위해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상념이랄까, 생각이 있습니다. 이 칼럼에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소학교 저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가라테를 하는 날은 키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형과 새하얀 도복을 차려입고 도장에 갑니다. 가라테 도장에서는 예의범절이 매우 엄해서 가라테만이 아니라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도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분하지 못한 저와 형은 선생한테서 몇 번이나 꾸중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연습이 끝나고 어머니에게 데리러 오도록 전화를 하려면 전화기를 빌려야 하는데, 도장 선생이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결국 하는 수 없이 비에 흠뻑 젖은 채 우리 집까지 달려온 기억도 있습니다.

나는 포워드, 형은 골키퍼

과외공부 중에서 유일하게 재미있었던 것은 수영교실입니다. 역시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았고 또 잘했기 때문에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물속이 절호의 놀이터가 됐습니다. 평소부터 아버지, 형과 함께 냇물에서 놀았기 때문에 풀장에서 헤엄치는 건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제일 잘하는 수영은 버터플라이(접영)입니다. 접영은 수영교실에서 배우는 최종단계의 종목입니다. 평영이나 자유형과 다른 것은 두 발로 물을 교대로 차는 게 아니라 돌고래 지느러미처럼 두 발로 동시에 물을 찬다는 점입니다. 돌고래처럼 우아하게 헤엄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어쩐지 남쪽 섬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 들어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저의 수영 솜씨를 어머니는 몹시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왠고 하니, 제가 다니던 수영교실 관계자가 “대세 군을 올림픽 강화선수로 키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고 진지하게 어머니께 말을 걸어온 적이 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이미 그때는 축구에 빠져서 정신이 없을 때였기 때문에 미련없이 거절했다고 합니다만. 만약 그때 수영의 길로 나아갔더라면 도대체 저의 인생은 어떻게 돼 있을까요. 한국의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선수나 일본의 기타지마 고스케 선수와 싸운다면 정말 근사하겠지요! 여담입니다만, 아버지는 저를 경륜선수로 키우고 싶어 했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제각기 마음대로 꿈을 꾸셨군요….(하하)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에게 자신들의 모든 애정을 쏟아붓고 꿈을 간직하면서 필사적으로 아이를 키웠구나 하는 걸 절감합니다. 그런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의 저에게 만족하고 계실까? 이번에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역시 축구선수보다 경륜선수가 되는 게 좋았다고 하실까?(하하)

제가 가장 오래 계속한 과외공부라면,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신 대로 축구죠. 마지막 끝맺음은 역시 축구 얘기로 돌아오고 마는군요. 미안해요!

유치원 다닐 무렵부터여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한 것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한 셈이 됐습니다. 희한하게도 축구만큼은 싫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언제나 형과 함께였습니다. 제가 프로 축구선수의 길을 걷기까지는 항상 그라운드 위에 형과 함께 있었습니다. 유치원 무렵의 축구교실, 초·중·고·대학의 우리 학교 축구부까지 죽 함께 소속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골을 넣는 포워드(FW), 형은 골의 수호신 골키퍼(GK)! 나이도 한 살 차여서 필연적으로 같은 필드에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학 시절에 형은 킥 사거리가 아주 긴 골키퍼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형의 골킥 도움으로 포워드인 제가 골을 넣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습니다. 축구할 때 형이 해준 어드바이스는 예외 없이 정말 유익했습니다. 역시 그라운드 맨 뒤쪽에서 10명의 선수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이니만큼, 냉정하게 시합운영 모습을 바라보는 형의 적확한 어드바이스가 있었기에 저도 잘 헤쳐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든 함께였고, 뭘 할 때의 본보기는 모두 형입니다. 물론 축구만이 아니라 패션이든 음악이든 뭐든 그렇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성에겐 형이 단연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형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축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그토록 싫어했던 과외공부지만, 성인이 돼 보니 참 이상해요. 다시 이것저것 흥미가 솟구치는 겁니다. 지금은 영어회화에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장차 제가 해외에서 축구를 할 경우에 대비해 영어회화를 해 두고 싶고, 또 축구를 그만둔 뒤에도 물론 쓸모가 있겠지요. 그리고 가볍게 해외여행도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질 것 같습니다.

영어공부 하면서 해외진출도 준비

실은 제 누나는 조선대학 외국어학부 영어학과를 졸업하고 5년 정도 영어교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누나한테서 영어회화를 배우면 제일 빠르겠지만 집이 떨어져 있어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네이티브 출신 선생한테서 본격적으로 배워서 영어 잘하는 정대세가 되려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집을 지키고 있는 누나, 형을 위해서라도 저는 더욱 열심히 해야만 합니다! 올해도 석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만 여러분 힘내세요♪ 그럼 또 다음에. 안녕.

정대세 조선 축구대표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