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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5 22:11 수정 : 2008.11.08 16:32

테헤란에서 열렸던 남아공월드컵 예선 북한 대 이란 전. 월드컵 예선의 첫골을 넣었지만 패배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정대세 제공

[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월드컵 예선 첫골의 기쁨도 앗아간 이란전의 패배…승리 대신 일체감을 배운 경기

안녕하세요.

한국에선 기쁜 소식이 있었네요. 피겨스케이트 그랑프리 시리즈 아메리카 대회에서 김연아 선수가 우승했다는데, 축하드립니다. 스포츠 뉴스는 종목 불문하고 부지런히 체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김연아 선수가 매번 ‘퍼펙트’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는 데는 정말 감탄하고 있습니다. 저도 매회 퍼펙트한 플레이를 의식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리 간단치는 않군요. 우아한 연기 뒤에는 반드시 그이만이 아는 힘든 연습과 상처, 고뇌도 있겠지요. 한번은 어느 지인을 통해 제 유니폼을 응원 메시지와 함께 김연아 선수에게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만,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선수예요. 그랑프리 파이널 연패를 향해 땀 흘리고 있을 김연아 선수를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연아, 내가 보낸 선물은 잘 받았니?

월드컵 예선전이 열린 이란에서 돌아온 지 3주일이 지났습니다. 이란에서의 귀중한 체험을 잊지 않으려고 적어 두려 합니다.


제가 이란을 찾은 것은 두 번째입니다. 처음 이란에 간 것은 지난해 9월.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ACL) 준결승에서 이란의 세바한과 대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330㎞ 떨어진 곳에 있는 이스파한이라는 도시가 세바한의 본거지. 저와 이란의 첫 만남은 이스파한 공항에서 이뤄졌습니다. 국제공항이긴 했습니다만 작고 아담한 곳으로, 면세점이 몇 개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올해 10월15일 월드컵 예선전입니다. 이번엔 이란 수도 테헤란에 갔습니다. 과연 수도의 공항답게 엄청 크고 멋졌으며 면세점도 즐비해 이스파한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습니다.

제가 대표전을 위해 중동 원정에 나설 때의 필수품은 아이마스크(수면용 눈가리개), 헤드폰, 블랭킷(모포)입니다. 조선 대표의 해외원정 합류지점은 중국 베이징입니다. 저도 일본에서 일단 베이징에 들어가 합류한 뒤 거기서 비행기로 다시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중동 방면으로 갈 때는 반드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두바이 공항에서 6시간의 대기시간이 있었습니다. 두바이라면 공항에서 바라보이는 수상도시가 멋지지요. 또 두바이 공항은 실로 다양한 인종들이 오가는데, 공항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지 않고 모포를 펴고 누워 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 이 광경을 봤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조선 대표 선수들도 중동 원정에 익숙해져서 아무 망설임도 없이 모포를 바닥에 깔고 잡니다. 이제까지 일본에서 이런 광경을 별로 본 적 없는 저는 바닥에 눕는 데 저항감이 있어 의자에 앉아 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도 중동 원정에 익숙해져서 모포와 아이마스크를 미리 준비해 갖고 갔습니다. 그리고 베개까지 가져갔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환승장 입구까지 가서 모포를 펴고는 소음을 막아주는 헤드폰과 아이마스크를 착용한 뒤 좁은 비행기 안에서는 불가능한, 대자로 누워 잠자기에 돌입합니다. 일어나니 어느새 6시간이 훌쩍 지나 금세 다음 비행기로 갈아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잠도 잘 잤으니 일석이조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럭저럭 테헤란에 도착!

최근 대표 생활도 완전히 몸에 익어 시간이 가는 것도 빠르고 충실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표 생활 할 때의 고민은 컨디션 유지입니다. 일본에서는 매주 말에 시합이 있어서 거기에 맞춰 트레이닝도 합니다. 대표 원정에서는 긴 비행의 영향으로 몸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만, 시합시간에 맞추려면 한정된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팀마다 저녁 무렵에나 약간의 연습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 호텔 안에서의 생활이기 때문에 연습부족으로 몸이 무거워져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오후 전체연습 외에 오전 중에 스스로 몸을 움직여 봐야겠다고 출발할 때부터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이란에 갔을 때 비가 전혀 내리지 않고 구름 한 점 없는 짙푸른 하늘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조깅에는 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날은 30분간 조깅을 했습니다. 이란은 고지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언덕이 많은 건 당연지사. 게다가 판단 미스로 갈 때의 15분은 계속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필연적으로 돌아오는 길은 계속 오르막길. 다리 근육세포들이 계속 뇌에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먼저 체중을 달아봤더니, 이것 참, 보통 80㎏ 안팎인 제 몸무게가 도착 당일 쟀을 때는 80.4㎏이었는데 82㎏이나 나갔습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다급해진 마음에 좋아하는 식사량도 줄이고 정말 즐기던 스프라이트 음료의 유혹도 뿌리치고 다음날부터 조깅을 한 시간으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테헤란에서 마라톤의 기쁨을 맛보다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 상쾌하게 달렸던 테헤란 거리. 정대세 제공
첫날 교훈을 살려 이번엔 먼저 오르막길을 30분 달리고 돌아올 때 내려오는 식으로 하기로 마음먹고 산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호텔 베란다에서는 시가지 너머에 시든 초목들이 깔린 장대한 산이 보였습니다. 그 산을 향해 오르막길로 딱 30분 정도 달린 지점에 산과 도시가 만나는 경계가 있는데 거기까지 도착했습니다. 이제까지의 조깅에서는 경험한 적 없는 상쾌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던 그 경치는 꽤 멀어 보였습니다만, 사람들 생활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페르시아어 같은, 해외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기분 좋은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디젤차가 달리는 거리를 빠져나와 산을 향해 계속 달렸습니다. 점점 가팔라지는 언덕길을 넘어 당도한 산에서 본 경치는 정말 천국의 절경처럼 느껴졌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라톤이 즐겁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량도 좀 줄이고 다음날 아침 체중을 재어보니 80.9㎏, 그 다음날에는 80.1㎏, 마침내 시합 당일에는 79.4㎏까지 떨어져 시합에 딱 맞춰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시합 당일은 조깅을 참았지만 나흘 만에 2.6㎏ 다이어트에 성공한 뒤 시합에 나설 수 있게 된 겁니다.

테헤란에서 매일 조깅을 하면서 기분이 너무 좋아 시합을 앞둔 긴장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이래도 괜찮은가 싶어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통상 시합 전에는 항상 체중이 불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에 사로잡히기 쉬운데, 그날만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 전혀 없이 실로 상쾌한 기분으로 자신만만하게 시합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달리고 컨디션 조절에 만전을 기했으니 몸이 무거울 리 없다는 자신감으로 불안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겠지요.

하지만 시합이 시작되자 역시 아시아의 강호 이란답게 기선을 잡고 그들의 페이스대로 끌어갔습니다. 이번 시합에서 이란 진용은 정말 풀 멤버로,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죄다 소집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대 당해서는 안 될 시간대에 마하다비키야 선수에게 선제골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 팀의 필승 방책은 계속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더라도 철벽수비로 막아내면서 상대가 초조해진 나머지 실책을 범하는 순간 역습을 가하는 패턴입니다. 그러나 피하고 싶은 시간대에 한 점을 내줘버리는 바람에 상대 페이스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또 우리는 기선을 제압당하면 몹시 힘들어지기 때문에 골을 넣어야 하는데 제대로 공격 템포를 올리지 못했고, 수비수가 골문 앞에 달라붙어 있다가 어쩌다 역습으로 나와도 한 템포 늦는 바람에 김이 빠져 단발로 끝나버리니 두터운 공세를 펼치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후반에 또 추가점까지 내줘 상대에겐 더욱 유리한 전개. 그 뒤 제가 세트플레이로 마침내 월드컵 예선 첫 골을 넣었고, 상승세를 탄 우리는 노도와 같이 공격을 퍼부어 세 번의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끝내 결정타를 날리지 못한 채 종료 휘슬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너무 분해서 그 자리에 쓰러져 올해 처음 눈물을 흘렸습니다. 골을 더 넣을 수 있었는데 넣지 못한 아쉬움. 한 걸음 뒤처졌을 뿐이지만 그 한 걸음이 가져온 큰 점수차. 좋은 승부를 해서 볼만한 시합이었던 것은 틀림없고, 실력차를 느낄 것도 없는 시합이었지만 완패했습니다. 그걸 통감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따라잡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조금만 더가 가 닿기에는 아득히 먼 거리라는 걸 절감한 시합이었습니다. 진 것은 진 것. 너무 아쉬운 패전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이란이 월드컵을 향해 한 걸음 앞서 가도록 만들어준 셈이 됐습니다. 그것을 그저 바라보면서 이를 앙다물 수밖에 없는 이 상황과 감정.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맛보았지만 그때마다 늘 다른 얼굴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나는 견딜 수 없는 회한. 나는 언제까지 이 회한의 벽을 바라봐야만 한단 말인가. 언제 정말로 성공을 손에 쥘 수 있을까.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우선 당장은 월드컵에 나가는 것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팀 동료들, 결선까지 꼭 같이 가자꾸나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이번에 저는 한 가지 큰 결심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반드시 가겠다”며 희망 섞인 기분으로 말해 왔습니다. 그 말 뒤에는 솔직히 우리 팀을 믿지 못하는 저 자신의 모습이 감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합을 통해 저는 뭔가 큰 것을 손에 쥐게 된 느낌입니다. 그것은 바로 일체감. 승리를 향한 모두의 뜨거운 마음을 직접 눈으로 보고, 11명이 마음을 하나로 뭉쳐 싸웠습니다. 마치 그라운드에 선 11명의 전사들 같았습니다. 한순간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음속으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이 멤버와 함께 월드컵에 가겠다고.

어느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해온 적이 있습니다. “대세는 어릴 때 월드컵을 보고 그것을 목표로 축구를 해왔나요?” 대답은 ‘노’였습니다. 어릴 적에는 월드컵 구장에 서는 건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너무 먼 존재라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꿈은 J리그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꿈도 꾸지 못했던, 꿈 이상의 무대에 서겠다고 마음 깊이 결의했습니다. 기다려 다오, 남아프리카여!!

정대세 조선 축구대표팀 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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