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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9 21:02 수정 : 2008.11.23 14:43

고3 때, 형의 음반 선물로 입문한 힙합은 축구 다음으로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이다. 정대세 제공

[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어머니의 샹송에서 힙합에 대한 열정까지 축구와 내 인생의 양대 산맥 이루는 음악 이야기

안녕하세요?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겨울이 벌써 저만치 다가와 있군요. 제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여러분 알고 계시는지요? 오늘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음악. 그것은 제 인생에서, 한마디로 얘기하면 제 자식과 같은 보물. 아직 제 자식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음악과 만나고 있을 때나 음악을 편집할 때는 마치 제 자식을 어르는 듯한 기분이 됩니다.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고, 언제 들어도 마음을 씻겨주는 음악. 음악을 들으면 그 곡을 지은 사람들의 인생이 떠오릅니다. 누군가에게 줄 시디(CD)를 만들 때도 몇 천개나 되는 곡 중에서 시디 한 장분인 18곡만 골라내야만 하는 심정이란, 제 자식한테 등수를 매길 수 없는 것처럼 고민스럽습니다. 대체로 최종 후보로 남는 게 30곡 정도인데, 거기서 다시 18곡으로 좁힐 때는 정말 괴롭습니다. 그래도 음악을 듣고 있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고, 인생 그 자체라 생각합니다. 친구와 같은 친밀함, 제 자식과 같은 사랑스러움. 정말 친근한 존재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음악은 늘 성장을 계속하고 날마다 진화해 가고 있습니다. 그 성장과 변화만 보고 있어도 자식과 같은 느낌이 드니 어쩌겠습니까.

러닝머신 뛰면서 샹송 연습하던 어머니

 제 의식 속에서 처음 음악을 들은 게 언제였을까요? 정대세의 음악 역사는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 보니, 기억에는 없지만 어머니의 자장가가 처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 뒤 의식에 남은 첫 노래는 무엇이었느냐, 그것 역시 어머니가 부른 샹송이었을 겁니다. 어머니는 자이니치(재일동포)로서는 드물게도 지역에선 잘 알려진 샹송가수였다고 합니다. ‘사랑의 찬가’.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샹송 연습을 하던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기억납니다.


 그리고 처음 능동적으로 음악을 들은 것이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키하라 노리유키의 베스트 앨범 <스마일링 1>을 샀습니다. 생전 처음 산 시디였죠. 그리고 그 당시 왠지 수집 본능에 쫓겨 어떤 아티스트의 음반을 사면 그의 과거 음반도 사고 싶어져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면 우선 시디부터 사들이는 생활이었고, 적지 않은 용돈이 모두 음악 시디 사는 데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사고 싶은 시디는 끝없이 발매되잖아요. 어른이었다면 모아서 산다든가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중학생인 저로서는 그런 요령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우리 집 찬장을 살짝 열어 보면 거기에 돈이 조금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몰래 꺼내서는 시디를 사버리곤 했습니다. 바라던 시디를 손에 넣은 기쁨도 있었습니다만 어머니한테 들키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안은 채 집으로 갔습니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금방 방으로 가서 시디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불안은 적중했습니다.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하는 저의 행동을 이상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자마자 곧 방에 틀어박혀 시디를 필사적으로 듣고 있던 저의 모습이 어딘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하하) 과연 어머니였지요. 아이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 변화도 금방 알아차리고 사태를 간파해 버렸습니다. 저는 부끄러워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두 번 다시 그런 짓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를 힙합 세계로 인도한 서부랩의 대부 투팍.
그런 식으로 음악과의 관계가 시작됐고, 그때까지는 일본 대중음악(제이팝)밖에 듣지 않았던 제가 자극 부족으로 음악 권태기에 빠져들던 무렵 만난 것이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 힙합입니다. 고3 졸업하기 직전 형한테서 일본 힙합 음반 한 장을 받아 엠디(MD)로 복사했습니다. 지브라(Zeebra)와 사이좋은 디제이 오아시스(DJ OASIS)의 소리에 감동먹고, 케이 더시 샤이니(K Dush Shinee)의 ‘라이밍’이라는 곡에 모자를 벗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에이치엠브이(HMV)라는 대형 시디가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에도 변함없이 집에서 보내준 용돈(3만엔) 중 약간은 후배들에게 밥 사주는 데 쓰고 나머지는 모두 시디에 쏟아부었습니다. 당시 저의 취미라면 분명 에이치엠브이에 기생하는 것이었을 겁니다.(하하)

 서부계, 동부계, 남부계, 그리고 얼마 전 생겨난 중서부계까지 지역마다 특징도 다르고 시대별로 유행도 다른 힙합 가운데서도 제가 좋아한 건 당시 전성기였던 서부 해안 쪽의 2팍(Pac)이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닥터 드레(DR.Dre)나 스눕 도기 독(Snoop Doggy Dogg), 아이스 큐브(Ice Cube), 쿠러프트(Kurupt), 로스코(Roscoe), 엔오아르이(N.O.R.E), 이그지빗(Xzibit) 등을 많이 들었고 그 외에도 물론 시야를 넓히기 위해 동부 해안의 비기나 데디, 제이 제트(Jay-Z)나 나스(Nas), 그리고 자 룰(Ja Rule), 디엠엑스(DMX)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 음악을 들어왔습니다.

 그리하여 아시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절한 음악계에 저는 매력을 느끼고 점점 깊숙이 빠져들어간 것입니다. 그들이 미국의 마이너리티라는 입장도 자이니치라는, 차별과 박해를 받아온 우리의 역사와 통하는 부분이 있어 공감했고 묘하게 동료의식까지 갖게 됐습니다.

 

 나의 영원한 우상 투팍

 그리고 뭐라 해도 아티스트로서 저 당당한 체격과 타고난 탄력성에 홀딱 반해 버렸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짜 정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본격적인 트레이닝 없이도 그만한 아티스트로서의 적성을 몸에 지닐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 아프리카 나라들이 침략당해 포로로 붙잡혀 육체노동을 강요당한 결과 디엔에이가 점점 파워풀한 것으로 변화해 갔다는 설도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잘 갈아 놓은 보석을 방불케 하며, 예술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몸입니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많은 미디어에는 축구 때문에 근육훈련을 했다고 했습니다만, 실은 그처럼 잘 갈고닦은 삶의 태도나 음악, 육체에 홀려 근육훈련을 계속해온 면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근육훈련의 목표로 삼아 방을 장식했던 인물은 물론 투팍입니다. 그 근육훈련이 지금은 충분히 축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게 저의 매력 포인트이기도 합니다.(하하)

 그리고 힙합을 들으면 들을수록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법칙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엔 일본의 제이팝에서 힙합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만, 처음에 무엇을 보고 놀랐느냐 하면, ‘피처링’이라는 꿈의 공연이었고 그 때문에 가슴 설렜습니다. 일본 제이팝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화려한 면면에 처음엔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니! 이 아티스트가 저런 거물과 함께 노래해도 괜찮단 말인가! 상상은 부풀어만 갔습니다. 다음에 열중한 것이 양악 특유의 ‘리믹스’! 인기 있는 노래는 그 백뮤직을 바꾸거나 리듬을 바꾸고, 다른 아티스트를 피처하거나 해서 실로 버라이어티가 풍부했고 상상은 터질 듯 마구 샘솟았습니다. 이제까지 가장 흥분한 리믹스는 아주 최근 것입니다만, 올해 어셔가 발매한 앨범 속의 <러브 인 디스 클럽 파트 2>라는 노래입니다. 곡 분위기가 싹 바뀌는데,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다음에 빠져든 것은 그 원곡입니다. 양악의 힙합이나 아르앤비(R&B)는 옛날 펑크(Funk)나 솔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옛날 음악을 배경으로 랩을 띄우거나 커버음악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특징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함께 들을 수 있는 것도 또한 블랙 뮤직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숀 킹스턴의 ‘뷰티풀 걸’은 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스탠 바이 미>의 주제가를 커버로 세워 크게 히트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스탠 바이 미> 세대의 사람에서부터 지금 그 시대를 모르는 아이들도 동시에 들을 수 있고, 그게 좋은 거지요. 제가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마빈 게이 등의 영향을 받은 게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세대나 제 자신도 접해 본 기간이 아직 일천해서 옛날 원곡은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그래서 음반을 사서, 가사 카드 등에 그 원곡 이름이 씌어 있으니까 거기에 씌어 있는 원곡 이름과 아티스트 등을 찾고 또 에이치엠브이에서 찾아 헤매면서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두 개의 장르는 물리지도 않았고, 그 밖에도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물론 재즈 힙합, 하우스, 트랜스, 하드 록, 유로 비트, 드럼앤베이스, 스카, 재즈 등을 두루 섭렵했습니다만 역시 저에게는 크레이지하고 하드코어적이며 기세등등한 느낌의 힙합 아르앤비가 딱 맞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 확신에서 옛날부터 동경해온 클럽에서 디제이가 사용하던 턴테이블과 믹서를 구입하기로 대학 다닐 때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물론 돈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엔 가지 않던 파친코에서 운을 하늘에 맡기고 베팅을 했습니다. 얼마 안 되는 군자금 3만엔을 밑천으로 그걸 불려서 사고야 말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정말 … 이틀 연속으로 대승! 그대로 주저없이 턴테이블과 믹서를 사러 달려갔습니다! 그때부터 취미의 영역을 넘어 제 생활의 기반으로 삼고, 축구에 못지않은 사랑을 바치게 된 겁니다. 예전부터 다른 사람과 같은 일을 하는 걸 무척 싫어한 저는 음악에서도 그런 길을 걸어갔습니다.

 

 축구와 힙합은 인류의 지혜가 낳은 선물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최근에는 순위에 들기 전의 최신 싱글을 모으는 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한국 아티스트 세븐이 배드보이 패밀리의 여성 힙합 아티스트 릴 킴을 피처해서 발매한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랐습니다. 정말 한국이라는 나라는 경제계는 물론, 박지성 선수나 김연아 선수처럼 스포츠에서든 어디서든 세계적으로 통하는 멘털리티와 포텐셜을 갖추고 있는 나라로구나 하는 존경의 염을 갖게 됐습니다. 일본 아티스트들 중에도 세계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만, 데뷔해도 거의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인 것 같은데, 정말 한국의 아티스트는 목소리도 댄스 수준도 아시아에서 발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저도 세계에 통하는 선수가 못 될 리가 없겠죠! 나머지 시즌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 가능성이 남은 제이 리그 우승을 향해 파이팅하겠습니다. 여러분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축구와 힙합은 둘 다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서로 존중하며 주장을 펴기 위해 만들어낸, 인류의 지혜가 낳은 선물이 아닐까요? 자, 그럼 또 안녕.

정대세 조선축구대표팀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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