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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출발 직전, “내 여권 어디 간겨?” . 사진 정대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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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인터뷰
꼬마에게 받은 팬레터 잊을 수 없어, 2009년에는 작곡에 도전해볼테야!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재일동포 축구선수 정대세 선수가 쓰는 칼럼 제목이다. 지금까지 정 선수는 축구선수로서의 고민과 기쁨을 보여줬다. 그러나 눈 밝은 독자라면, 동시에 정 선수가 음악과 패션에도 대단한 열정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축구장을 벗어난 ‘인간’ 정대세가 궁금했다. ‘인민 루니’(한국 네티즌들이 정 선수에게 붙인 별명)는 언제 행복할까? 따라서 이번 인터뷰에 제목을 단다면 ‘프리킥 차는 정대세의 즐거운 멋 부리기’쯤 될 터다. 인터뷰는 전자우편으로 진행했다.
〈esc〉: 정 선수가 올해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정대세(이하 정) : 가장 즐거웠던 일은 단연 바비큐와 물놀이!! 지난여름 10여명의 팀 동료와 함께 도무지 도쿄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마치 쇼와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오쿠다마라는 곳에 물놀이하러 갔을 때의 얘깁니다. 청청한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이 마비될 지경이었고 공기도 상큼해 심호흡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깊은 산속이었습니다. 거기는 캠프장 시설이 돼 있는 곳이어서 불을 피운 뒤 먼저 바비큐를 해먹었습니다. 강가에서 자란 저는 바비큐를 즐기면서도 강에 뛰어들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그런데 물놀이를 하러 갔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마치 점프대처럼 6~7미터는 됨직한 바위가 있었습니다. 체감 높이는 10미터가 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심으로 돌아간 저는 그 바위에서 그냥 뛰어내리는 것은 물론 앞으로 공중제비돌기, 뒤로 공중제비돌기 등 온갖 종류의 점프를 감행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데, 다치기라도 했다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에 ‘다음엔 그런 짓 말아야지’ 다짐하고 있습니다.(하하)
꼬마의 귀여운 팬레터가 내 맘을 녹이네
〈esc〉: 정 선수는 뭘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정 : 진부한 얘기 같습니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그걸로 생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지요. 누구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저는 예전부터 ‘축구 바보’였지만, 그런 소년이야 어디든 있는 법이어서 그런 소년들 중에서도 내가 이 무대에 서게 되고 지금도 소(초등)학생 시절부터 간직해온 꿈을 계속 꿀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제가 이 무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걸 행복하다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sc〉:정 선수가 올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나 속상한 일, 황당한 일은 무엇인가요?
정 : 올해는 그렇게 인상적인 실수는 없었기 때문에 지난해 있었던 대실수를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려 합니다. 대표로 해외원정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에 도착하면 팀 스태프한테 여권을 맡기는 게 해외원정 때 정해진 순서입니다. 해외원정도 종반에 접어든 때였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클럽 시합이 있기 때문에 다른 팀 동료보다 먼저 그곳을 출발할 예정이어서 한 발 먼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언제나 여권과 티켓을 넣어두는 감색의 조그마한 자루를 뒤져보니…없네! 없어, 없어!! 여권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넣어둔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진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보니 팀 스태프에게 맡겨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체크인은 출발 50분 전까지 끝내지 않으면 비행기에 탈 수 없습니다. 그때의 시각은 이륙 1시간15분 전. 팀 스태프와 연락이 닿긴 했습니다만 25분 안에 공항까지 갖고 올 방도가 없었습니다. 체념하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딩동딩동♬ 비행기 출발 지연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시○○분발 일본행 편은 도착이 늦어져 출발이 30분 지체됩니다. 딩동딩동♬” 그 순간 저는 주먹을 치켜들며 속으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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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대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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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당신이 올 한 해 받아본 가장 즐거운 팬레터나 선물은 무엇입니까?
정 :올해 가장 저를 웃게 한 건 어린 꼬마한테서 받은 팬레터입니다. 아직 미처 히라가나(일본어 철자)도 채 익히지 못한 듯한 서툰 문장으로 “저는 대세씨는 얼굴이 이상해서 싫었습니다만, 축구는 정말 잘해서 지금은 좋아합니다”라고 쓴 팬레터는 진짜 웃겼습니다. 저는 축구선수니까 얼굴 잘생겼다고 칭찬해주시지 않더라도 축구 때문에 팬이 돼주시는 분이라면 대환영입니다!(하하)
〈esc〉: 옷을 멋지게 잘 입습니다. 평소 즐겨 입는 패션은 힙합 패션인가요? 옷은 어디서 주로 사시나요? 스스로 고르나요?
정 : 제 패션은 모두 형을 견본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미지네이션이 풍부한 형은 옷맵시 아이디어도 많아 제가 곧잘 참고하고 있습니다. 형의 패션 장르는 검정 계통입니다. 대학시절 힙합 패션은 일본에서도 헐렁헐렁한 게 주류여서 상의도 셔츠도 바지도 구두도 하여튼 오버사이즈로 입었습니다. 사이즈는 놀라겠지만, XXXL이었던가.(하하) 그래도 대학 졸업 무렵부터 힙합 신의 패션도 바뀌기 시작해 점차 헐렁한 것보다 날씬한 쪽이 유행했고 지금은 저도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옷이나 음악이나 제 주변 사람과 같은 걸 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흑인 옷차림을 참고해서 옷을 입습니다. 쇼핑은 언제나 제가 사는 나고야의 G’DUP이라는 수입상에서 합니다. 하지만, 대신에 수입상이어서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쌉니다. G판(jeans pants. 청바지의 일본식 조어) 한 벌에 5만엔(현재 약 75만원)은 당연한 정돕니다. 역시 좋은 물건은 비싸요. 그 균형을 고려하면서 옷을 고르고 있어요.
형에게 패션 감각을 배워
〈esc〉: 당신을 지금의 정대세로 만들어준 책을 3권만 골라주세요.
정 : 저는 동년배의 젊은 사람들에 비하면 책을 잘 읽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1. 신초샤의 <시오카리토게>(홋카이도에 있는 고개이름. ‘시오카리 고개’라는 뜻. 저자 미우라 아야코) 2. 이와나미신쇼의 <독서력>(저자 사이토 다카시) 3. <속담 사전>. <시오카리 고개>는 신앙소설로, 기독교에 전혀 관심이 없던 한 남자가 자기 주변의 기독교 신봉자 이야기를 듣다가 기독교에 매력을 느끼고 끌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몸을 희생해서라도 사람을 구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그 남자가 마지막에 시오카리 고개에서 일어난 전차 사고 때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 많은 승객을 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을 읽은 건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그때까지 종교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이 책을 계기로 시야가 엄청 넓어졌습니다. 두 번째 책은 <독서력>. 이 작품은 책을 읽으면 다양한 힘이 생긴다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그것을 위한 힌트가 듬뿍 들어 있는 책입니다. 실로 20살 무렵 저 자신에게 혁명을 불러일으킨 책이었습니다. 세 번째인 <속담사전>은 속담을 많이 알게 되면 좋겠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에 고교시절 왕복 3시간 걸리는 통학 길에 읽기 시작해, 지금도 좋아해서 짬이 나면 여기저기 펼쳐 읽고 있습니다.
〈esc〉: 당신은 그라운드에만 서면 모든 고민이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비결이 뭔가요?
정 : 저는 평소 안고 있는 고민이나 불안을 몽땅 축구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적 스트레스는 해소됩니다. 인간은 고민이나 불안을 안고 있을 때 어딘가로 도망갈 길을 만들어 튀고 싶어지지만 저는 그런 마이너스 이미지를 축구로 발산합니다. 생각해 보면 중·고교, 그리고 대학시절에도 뭔가 싫은 일이 있으면 오후부터 시작되는 부 활동에서 그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벼랑 끝에 몰리는 불안에 사로잡혀, 지금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자문자답할 때 역시 축구밖에 없었습니다. 프로선수가 된 지금도 그 감각은 비슷하지요.
〈esc〉:당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테헤란처럼 조선 대표팀 일정으로 방문한 곳을 제외하고 답해 주십시오.
정 : 제 마음에 든 여행지는 단연 오키나와입니다! 그곳은 최고!! 팀 동료인 골키퍼 요시하라 신야와 함께 매년 그곳에 가는 게 정례행사가 돼 있습니다. 평소 클럽에서 포지션 다툼이나 적과의 싸움, 시합 전의 긴장감 등으로 신경이 마모돼 있는데, 그런 피로에 절어 있는 저를 오키나와의 느긋한 섬이 감싸 안아 주는 느낌입니다. 많은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뭐라 해도 바다의 색깔! 라이트 블루의 아름답고 투명한 바다, 하늘의 푸른색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 섬 사람들은 부드럽고, 편하고 한가로우니 최고!! 평소 도시의 소란 속에서 지내다 보니 더욱더 그렇고, 시간에 신경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시간 자체가 천천히 흘러가는 이 섬에서 휴대전화도 내동댕이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멍하니 석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나둘 별이 뜨기 시작해 어느샌가 해는 지고 하늘을 온통 채운 별들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꼭 한 번 가 보세요♪
〈esc〉: 당신은 칼럼에서 축구가 잘 안되는 시기를 ‘충전 기간’이라고 편하게 생각한다고 썼습니다. 축구가 잘 안될 때 정 선수가 극복하는 비법은 무엇입니까?
정 : 일단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겁니다. “생각대로 안된다”는 건 “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생각대로 안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 이미 도전은 시작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대로 계속하면 일직선으로 목표를 향해 갈 수는 없다 하더라도 조금씩 먼 길을 돌아가면서 목표에 다가가게 돼 있습니다.
홋카이도 찍고 오키나와로, 올겨울 대세의 여행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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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의 즐거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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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올 시즌이 최근 끝났는데 무엇을 하면서 이 겨울을 보낼 계획이세요?
정 : 올해 겨울휴가 때는 크리스마스 무렵 히로시마의 벗을 만나러 갔다가 어쩌면 그길로 홋카이도에 날아가 해산물이나 실컷 맛보겠습니다. 그리고 연초에는 앞서도 소개한, 정말 좋아하는 오키나와에 친한 멤버들과 함께 다녀올 작정입니다! 돌아오는 비행기표는 예약하지 않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예정입니다.
〈esc〉:2009년에 축구 말고 재미를 위해 새로 도전해 보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정 : 작곡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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