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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우수 선수로 뽑혀 J리그 어워즈 시상식 무대를 밟은 정대세(맨 왼쪽). 가와사키 프론탈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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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인터뷰
설레며 기다렸던 베스트11 수상,
탈락했지만 분노와 원망보다는 더 큰 결심으로 새해를 맞다
여러분, 새해 안녕하십니까!
저에겐 프로축구 선수가 된 지 3년째였던 지난해는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해였고 올해도 계속 축구선수로 뛸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해는 프로 3년째로, 클럽 중심으로 리그전을 치르고, 동아시아 선수권·월드컵 예선전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듯합니다. 제이(J)리그에서는 팬 여러분을 애태우게 만든 시합도 있었습니다만 마지막까지 우승을 다퉈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시즌 14득점을 올려 득점랭킹 3위라는 그런대로 괜찮은 성과를 냈습니다. 저도 이제 가까스로 클럽의 중심 선수로 정착하게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마지막에 득점을 올려 팀과의 일체감을 다질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비를 맞은 3년째였던 만큼 언론에서도 시끌벅적한 해였습니다. 연말에 저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 2개가 일본에서 방영됐고 축구잡지에서도 많이들 다뤘습니다. 또한 약 300명의 팬들 앞에서 하는 토크쇼에도 불려나가는 등 정말 꽉 찬 한 해였습니다.
특히 다큐멘터리 프로는 반년간 밀착취재를 해, 도대체 어떤 작품이 나올지 저로서도 몹시 기대가 컸습니다. 지난해 4월 한국 에스비에스에서 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만, 일본에서 방영한 것은 처음입니다. 하나는 10분짜리고 또 하나는 90분짜리 특별프로 형식으로 방영했습니다. 내용은 칼럼에서도 몇 번인가 썼습니다만 대표팀과 클럽, 양쪽을 한꺼번에 뛰는 데 따른 고민과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다룬 것입니다. 제가 이 다큐멘터리를 본 감상은, 활약과 고뇌, 겉과 속을 약간이나마 공개함으로써 여러분이 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마치 벗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기분인데, 그 고민이 전파를 타고 전국 시청자들에게 가 닿음으로써 올해의 고민이 싹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 버린 듯한 기분입니다.
다큐멘터리 방영 뒤 우쭐해진 기분
프로그램 영향 덕인지 가는 곳마다 눈에 잘 띄어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말을 걸어올 때는 웃는 얼굴로 한 손을 들어 쿨하게 보이려 합니다만 속내는 너무 기뻐서 제비돌기라도 하고 싶어집니다!(하하) 설쳐대기 좋아하는 저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말을 걸어올 정도로 유명하게 되는 것, 그게 소박한 동경의 하나였다고요! 취재가 줄을 이어 아버지 어머니한테서도 많은 도움을 받아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대세가 프로가 되고 유명해져서 기자들이 우리 집에 취재하러 오도록 열심히 해줘” 따위의 농담을 했는데 이제 그게 현실이 됐습니다만, 저의 쾌속 진격은 이제부터입니다.
새해 첫날 사촌 집에 갔을 때 들은 말이 있습니다. “너는 나름 일류가 됐지만 아직 초일류가 된 건 아니야. 그러니 여기서 다른 일에 정신 팔아선 안 돼!” 정말 그렇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지난해엔 나름의 성과를 내고 그럭저럭 평가도 받았습니다. 프로 1년 때의 일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고 목표를 향해 꽤나 전진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I am still only standing in the half line.” 그것을 통감한 계기가 ‘제이리그 어워즈’ 시상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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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팬미팅에서 팬들과 함께 보낸 즐거운 한때. 정대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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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보아 우수선수에 뽑힌 저는 제이리그 어워즈에 참가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거기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리그전 우승 클럽의 선수들과 우수선수로 뽑힌 선수를 포함해 각 클럽 3명까지입니다. 최우수선수(MVP)·득점왕·베스트 일레븐 등등 다채로운 표창을 주는데, 제이리그 1년을 총괄하는 호화 표창식 같은 겁니다. 베스트 일레븐이란 우수선수로 뽑힌 30명 중에서 포지션별로 제이리그 최고의 11명을 가려내는, 제이리거라면 누구나 바라는 권위있는 상입니다. 수비수(DF)와 미드필더(MF)에서는 4명 정도가 뽑힙니다만 공격수(FW)에서 뽑히는 건 많아야 둘밖에 안 됩니다. 단연 톱 득점왕으로 클럽을 우승으로 이끈 마르키뇨스 선수는 반드시 들어갈 테니 남은 자리는 하나. 제 머릿속에서는 득점 랭킹 2위의 다비 선수도 있었지만 그는 클럽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와 같은 득점 랭킹 3위의 야나기사와 선수도 있지만 임팩트는 절대 제가 지지 않고 클럽 성적을 보면 각각 2위와 13위니 우리 클럽이 이겼습니다. 클럽 준우승으로 이끈 득점 랭킹 3위는 상을 탈 만한 가치가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비를 뿌리는 날씨 속에,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가슴 두근거리며 식장에 갔습니다. 날씨는 무거웠지만 제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일조선인 제이리거가 과거에 우수선수로 뽑힌 전례가 없는데다 제가 그 길을 개척해서 베스트 일레븐에 뽑힐 수도 있는 상황까지 와 있었던 겁니다. 뚜벅뚜벅 힘차게 나아가리라며 자신만만했고, 바로 오늘이 재일조선인 제이리거 역사에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시상식장에 도착해 많은 선수들과 인사를 하며 한 바퀴 돌았습니다. 조선 대표로 선배인 량영기 선수도 와 있었습니다. 식장에서 리허설을 하고 대기시간을 거친 뒤 드디어 본무대로. 하위 클럽 대표부터 차례차례 무대로 불려나가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지정된 좌석으로 갑니다. 저는 나중에 베스트 일레븐에 선출돼 다시 무대에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최초의 베스트 일레븐이 됐다면
과연! 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한 연출과 영상. 다시 한 번 이 제이리그 어워즈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상을 발표할 차례입니다. 처음엔 클럽 단위의 표창이 있었고, 그 다음은 개인 타이틀 발표. 순번은 신인왕, 득점왕, 엠브이피, 베스트 일레븐 순입니다. 득점왕은 이의 없이 21득점의 마르키뇨스 선수. 올해 그의 활약과 높은 득점 능력은 압권이었습니다. 특히 제이리그전 7경기 연속 골은 경의를 표할 만한 일인데,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가시마 앤틀러스의 우승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런 그가 당연히 엠브이피도 이의 없이 수상했으니 더블 수상. 다음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베스트 일레븐 발표입니다. GK→ DF→ MF→ FW 차례로 발표됩니다. 문지기(GK)가 뽑힌 뒤 “다음은 DF 5명을 발표하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체념했습니다. 일본에는 뛰어난 중간필드 선수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MF에서 최소 4명이 뽑힌다고 상정하면 GK 1명, DF 5명, MF 4명이라는 얘긴데, 그러면 전술 포진이 5-4-1이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FW가 1명이 되면 물론 마르키뇨스 선수로 확정됩니다.
그러나!! MF 수상자가 발표됐는데 이게 웬일, 그 수는 3명. 그 순간 제가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는 길에 서광이 비쳤습니다. 심장의 고동이 최고조에 달했고, 마침내 발표. “FW… 가시마 앤틀러스 마르키뇨스 선수!! 마지막으로 FW…… 교토 상가FC 야나기사와 아쓰시 선수~!!”…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뭔가가 터져버렸습니다. 눈앞 무대에서 화려한 빛을 받고 있는 일레븐을 그저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회한과 무력감을 아무도 모르게 소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승부의 세계에 있으면 이런 국면에 수도 없이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승자를 객석에서 바라보며 마음에도 없는 박수를 쳐야 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 그럴 때는 뭐든 싫어집니다. 자신의 행동이나 호흡마저도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위치에 설 수 있을까. 얼마만큼 노력하면 나는 저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기혐오에 빠졌습니다. 지금까지의 승부는 시합 점수차로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나뉘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런 기분 속에 저의 2008년 축구는 막을 내렸습니다.
12월31일. 새해를 어떤 해로 만들까 생각했습니다. 제이리그 어워즈 종료 뒤 대세가 일본인이었더라면 확실히 베스트 일레븐에 뽑혔을 거라는 얘기를 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위로의 말에 넘어가 “나는 잘했다. 외국인으로는 일본에서 활약해 봤자 톱이 될 순 없어”라고 자기만족과 차별적인 감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브라질인 마르키뇨스 선수는 압도적 성적을 올리며 일본에서 타이틀을 석권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스트 일레븐에 뽑힌 야나기사와 선수도 팀이 필요할 때 확실히 골을 넣어주는 에이스 스트라이커인 건 분명합니다. 저는 이번 결과가 자기만족과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차별의식 속으로 도망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벼운 위로 대신 묵직한 결심이 나를 끌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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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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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프로축구 선수가 됐을 때의 결의를 떠올렸습니다. 저의 꿈은 세계에 통하는 선수가 돼 유럽에 가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탄성을 지를 만한 플레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로부터의 평가나 많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게 아니라 최고의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 진정한 승자입니다. 최고의 결과에는 저절로 최고의 평가가 따라오는 법입니다. 달콤한 말에만 귀를 열었던 지난해까지의 저는 리셋하고 또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큰 목표를 세울 계기가 돼 주었습니다.
저는 올해 1년 꿈을 향해 크게 한 걸음 다가서겠다는 결의를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올해의 정대세도 인간 불도저처럼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한국의 여러분, 복 많이 받으세요.
정대세 조선 축구대표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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