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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휴가에서의 즐거운 한때. 눈밭의 아침 조깅도 상쾌했다. 정대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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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잊을 수 없었던 홋카이도 휴가 여행 …
엘리트 출신 야지마, 선의의 경쟁을 하자
일본에서 제일 추운 곳은 홋카이도입니다. 지난해 말 오프 때 다녀왔습니다. 한 해 동안의 피로를 씻어내고자 팀원 중에서도 가장 사이가 좋은 골키퍼 요시하라 신야씨와 함께 갔습니다. 해마다 동계 오프 기간이 되면 따뜻한 오키나와로 가서 열심히 개인 자율 훈련을 합니다만, 올해는 추운 겨울에 일부러 추운 곳으로 가서 홋카이도의 제철 정취를 맛보기로 작정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의 스키 여행에서 시작해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의 축구부 원정까지 열 번 정도 홋카이도를 방문한 경험이 있고 지인들도 많아 놀기에도 편한 곳입니다. 이런저런 추억이 넘쳐나는 홋카이도입니다만, 이번에 홋카이도로 가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빙판에 넘어져도 부끄럽지 않아
출발은 느긋하게 한낮 무렵. 그런데 설마 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요, 홋카이도 하면 눈 축제가 유명하죠. 그만큼 눈이 많이 내리는 곳입니다. 간토(관동: 도쿄와 그 인근 지역) 지방에서는 추위만 걱정하면 되지만 홋카이도에선 폭설이 걱정거립니다. 하지만 그게 홋카이도의 매력이기도 하고, 홋카이도 근해에서 나는 해산물은 일품이어서 역시 포기할 순 없습니다.
산꼭대기에 오르기까지는 힘든 것처럼, 역시 좋은 추억을 남기려면 평탄한 길을 걸어서는 안 되는 법. 폭설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예약했던 비행기는 결항이 됐는데, 몽땅 결항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6시간 이상 대기한 끝에 겨우 홋카이도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홋카이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하늘도 완전히 어두워져 공항에 내릴 때 보이는 야경이 자다 일어났을 때의 몽롱한 도취감을 한층 더 기분 좋게 만들어 줬습니다. 물론 머리에는 헤드폰을 쓰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도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경기 전이나 여행지에서 자다 깼을 때 느긋하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지나쳐가는 바깥 풍경을 반주 삼아 음악을 즐길 때가 제일 또렷하게 마음속에 와 닿습니다.
저를 마중 나와 준 것은 온통 하얀 눈세계. 저는 홋카이도의 추위를 알면서도 복장은 하필 긴소매 티셔츠에 가죽점퍼만 달랑 걸친 가벼운 차림. 그래서 공항을 나와 바깥세상을 바라봤을 때는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덮쳐왔습니다. 그래도 도쿄에 살면 눈을 볼 기회도 좀체 없고, 주위가 온통 눈밭이 되는 일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이런 꼴입니다만, 저는 겨울과 여름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으냐는 질문엔 언제나 겨울이라고 대답합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나고야에 큰눈이 내려 제일 가까운 역까지 어머니가 마중 나왔을 적에 너무 좋아서 큰 소리로 떠들었더니 “네가 그리도 밝은 성격이었더냐?”고 어머니가 핀잔을 주셔서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눈을 정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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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휴가에서의 즐거운 한때. 눈밭의 아침 조깅도 상쾌했다. 정대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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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들이 저를 성대하게 맞아들인 뒤, 홋카이도 제일의 번화가인 스스키노로 향했습니다. 그날은 눈이 내린 탓에 길은 온통 미끌미끌한 빙판이었습니다. 저도 세 번 정도 넘어져 팔꿈치를 세게 부딪혔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길을 가던 사람들이 쿵쿵 넘어졌기 때문에, 홋카이도만큼 길거리의 남들 앞에서 넘어져도 부끄럽지 않은 곳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스스키노에서는 홋카이도에서 제일 신선한 생선 요리를 내놓는다는 가게로 가서, 참치 뱃살을 비롯한 가지각색의 생선 요리로 입을 호강시켰습니다. 행복도 가득, 꿈도 가득, 배도 한가득. 오랜만에 축구에 대한 일을 잊고 제대로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프시즌의 특권인, 밤늦도록 놀고 다음날 점심시간 지나도록 늦잠 자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또, 작년부터 시작한, 여행 가면 늘 하던 조깅을 홋카이도에서도 물론 할 수 있었습니다. 호텔 앞에 있던 강변에서 천천히 한 시간쯤 뛰었습니다. 이란에서 조깅했을 때처럼, 낯선 땅에서 느긋하게 경치를 구경하며 뛰는 건 정말 기분 좋습니다. 특히 홋카이도는 강변도 길거리도 지붕들도 온통 눈세상이기 때문에 제 마음속까지도 하얗게 씻기는 기분이어서 정말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별일 없이 홋카이도 여행은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여러분들도 일본에 오신다면 홋카이도에 가 보시라고 추천하겠습니다.
대학시절 선망했던 그가 팀 내의 경쟁자로
느긋하게 오프 때의 추억에 젖어 있었습니다만, 오늘은 제 새로운 라이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올해, 라이벌인 가라하씨가 출장할 기회를 찾아 비셀 고베로 이적했습니다. 한국 대표 김남일 선수가 소속돼 있는 팀입니다. 제가 소속된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스피드형 공격수(FW)는 많이 있는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런 타입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죽어주는’ 선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흔히 말하는 포스트 플레이어라는 거죠. 저와 가라하씨가 그런 플레이어였습니다. 가라하씨가 이적하게 되어, 포스트 플레이어 타입의 공격수는 저만 남게 되었는데요, 올해는 아시안 챔피언스 리그(ACL)에도 출전하기로 돼 있는데다, 저는 월드컵 예선 준비도 한창이라 대표팀에도 몇 번 합류해야 해 엄청 빡빡한 스케줄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프런트가 반드시 포스트 플레이어를 한 명 더 데려올 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강적이 내 앞을 막아설 것인가,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습니다.
소문으로는 이미 듣고 있었습니다만 시미즈 에스펄스(조재진 선수가 예전에 소속돼 있던 팀)의 야지마 다쿠로라는 FW 선수가 프론탈레에 들어오기로 결정됐습니다. 야지마 선수는 저와 동기이기도 하고 해서 뭔가 인연이 있는 선수로, 지금까지 마주칠 기회가 많았던 선수입니다.
야지마는 와세다대학의 축구부에 소속되어 있는데, 와세다대학이라면 일본 전국에서도 손꼽는 명문대학인데다 축구도 강호였습니다. 우리 조선대학이 와세다대학과 연습게임을 벌여도 실력 차이가 너무 커서 내용 면에서도 점수에서도 압도당했습니다. 그때부터 야지마는 특별취급을 받았고, 지금 제가 소속되어 있는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강화지정(强化持定)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프로팀에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장래도 전혀 보장받지 못하던 평범한 선수였습니다. 반면, 야지마는 프로 스카우터가 한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는 장미 같은 존재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엘리트 선수였습니다.
야지마와 처음 함께 플레이를 한 건 3학년 때 대학 선발에 뽑혔을 때입니다. 나와는 확실히 격이 다른 선수구나 하고 회한에 찼던 일이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선발 합숙 방 배정 때 우연히 한방에 배정돼 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꽃을 피운 것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런 그는 대학 졸업 뒤 시미즈 에스펄스를 선택하고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간신히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할 수 있었을 정도로 볼품없었습니다. 어느덧 저는 동기에다 포지션도 그와 같아서, 제멋대로 엘리트인 그를 라이벌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쪽은 저를 의식조차 하지 않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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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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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프로 1년차에 시합에 나가지 못해 잘리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을 때도 그는 시합에 나가 감바 오사카의 시지클레이 선수를 날려보내고 골을 넣었고, 나는 그 모습을 텔레비전 브라운관 앞에서 기뻐하면서도 주먹을 꽉 쥐고 봤습니다.
그 뒤,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제게는 결과가 따라왔습니다. 한편 그는 다치기도 하고, 팀메이트가 성장하면서 레귤러 자리를 빼앗기기도 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저와 그의 처지는 180도로 완전히 뒤바뀌어 이번에는 제가 도전을 받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것도 똑같은 팀에서.
저는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습니다. 정면 승부를 할 생각입니다. 할 일은 지금까지와 같습니다. 미래에는 ‘절대’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좀더 먼 앞날이 보이기 때문에 당장 눈앞의 라이벌보다 더 멀리 응시할 생각입니다. 질 리가 없습니다. 올해의 정대세에게는 새로운 라이벌의 출현으로 이제껏 만나본 적이 없는 높은 벽이란 시련이 눈앞에 서 있습니다만, 서로 동기인 선수끼리 실력을 갈고닦아 J리그를 빛내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우리 두 사람의 승부에 주목해 주세요. 앞으로 레귤러 자리다툼에 대한 경과도 보고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대세를 응원해 주세요♪
정대세 조선 축구대표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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