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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03 14:35 수정 : 2008.09.08 15:53

김형배 기획위원

[김형배 칼럼]
허술한 마음가짐으론 만년 야당도 힘들어
‘섀도 캐비넷’ 구성해 정책 대결 펼쳐야

최근 민주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이 “요즘은 우리 당을 욕하는 사람 만나보기도 힘들다. 차라리 미워하기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우리 당에 관심이 남아 있다는 표시 아니냐. 정말 답답하다”고 푸념하고 다닌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의 잇따른 패배로 도로 야당이 된 민주당의 어려워진 정치적 입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말에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어 헷갈리게 한다. 잇따른 큰 선거에서 주권 행사를 포기하거나 그나마 괜찮은 자기 당 입후보자들마저 마구 낙선시킨 유권자들의 발빠른 등돌림에 대해 강한 섭섭함이 묻어났다. 광역과 기초 자치단체의 장과 의회 등 지방권력에 이어 중앙정부의 대통령과 행정부까지 모두 넘겨주었으면 됐지,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으로 정치권력의 독주를 견제할 의회마저 한나라당에 통째로 넘겨준 이 땅의 유권자들이 정치적으로 너무 야속한 것 아니냐는 무언의 항변도 깔려 있는 듯 보인다. 실제로 힘의 균형이 무너진 국회에서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민주당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그런 뜻에서 그의 좌절감에 동정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민주당의 좌절을 보면서 이런 결과를 빚은 데 대해 제대로 된 자기진단이라도 거쳤는지 되레 의문이 앞선다. 최근 4년간의 연전연패를 모조리 유권자 탓으로 돌리는 사고 행태는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말 그런 수준이라면 정신을 못 차려도 한참 못 차렸다. 재집권 실패에 대한 집단적인 자기반성을 공유하지도 못한 채 이제 소수당이 됐으니 그럭저럭 야당생활이나 즐기겠다는 심산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이런 허술한 마음가짐으로는 차기 집권은 고사하고 만년 야당 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한나라당은 와신상담이라도 했는데 너무나 비교된다.

국민들이 보기에 민주당의 거듭나기 비법은 뻔하다. 그 첫번째가 정확한 자기진단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는 법이다. 자신들을 수권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고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되찾아 재집권까지 할 수 있도록 할 왕도는 평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민주당을 왕따시킨 유권자들의 싸늘한 시선은 어디서 왔는가. 근본 원인은 집권 10년 동안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권력의 단맛을 본 뒤 너무 일찍부터 자세가 흐트러졌던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가 경륜이고 콘텐츠와 정치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민주당의 콘텐츠는 무엇인지 고개를 갸우뚱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공부들을 너무도 안 한 탓이다. 헌법에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입법기관으로 규정한 이유는 제대로 된 정책을 개발해 민주주의와 민생을 잘 살피라는 뜻일 터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잃고 국회의원 자리마저 절반 가까이 놓친 것은 내공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당 내부의 의견도 모으지 못한 채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개정을 관철하겠다고 밀어붙일 때, 그리고 부동산 관련 정책을 우격다짐으로 가져가는 민주당을 보는 국민들은 참담했으리라. 괜한 소란만 피운 채 집권당 체면만 구기는 ‘준비 없는 오합지졸의 정당’을 느낀 것이다.

민주당의 ‘도로 야당’이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뜻깊은 기록으로 남을지 여부는 그들 자신의 몫이다. 목청부터 높이기보다 공부하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분야별로 정책을 개발하고 콘텐츠를 쌓아가는 일을 시작해 당의 정강 정책을 만들 자산으로 삼는 것이 첫째 과제여야 한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을 상정하고 행정부 각 부의 예비장관을 임명하는 섀도 캐비닛을 빨리 구성해 국민들에게 이들의 업무수행능력을 검증받도록 해보자. 여야 중 누가 일을 얼마나 잘 설계해 꼼꼼하게 챙기는지는 금세 밝혀진다.

대개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가장 극심할 때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기는 집권당에 대한 원망이 높을 때보다 야당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이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야당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걸 수 있게 하는 것은 민주당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할 때 유권자들의 자발적 지지와 참여가 자연스레 오는 것이다. 이번 대폭적 감세 조처도 면밀하게 따지고 그 정책이 소수 부자들을 위한 것일 뿐 국민복지 축소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줄지를 분석해 국민 앞에 전모를 알려야 한다.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고 민생을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공약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를 밝혀내는 일은 시급하다. 민주당은 이럴 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정책 색깔을 확실하게 세우고 대안 정책을 개발해 제시해야 한다.

특정 학벌과 종교, 특정 지역에 부자들 중심의 ‘고소영 인사’로 정권의 틀을 짠 이명박 정부의 ‘부자들만의 잔칫상’은 이미 성대하게 차려졌다. 앞으로 4년 동안 특정 자산가와 재벌들은 눈치 안 보고 ‘막가파 잔치’를 즐기게 될 것이다. 부자만을 위한 아주 노골적인 잔치 말이다. 여기서 소외당한 가난한 사람들의 민생경제를 살피는 일을 시작하는 것은 민주당이 확실하게 자신의 국민적 입지를 다시 넓혀 올곧게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형배 기획위원 hbk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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