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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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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칼럼]
양극화 정책 남발로 서민 삶 무너져내려
지난달 말 30대의 한 주부가 어린 남매와 함께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어 네살 난 딸과 함께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아들도 몇차례의 대수술을 앞두고 있을 만큼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졸지에 아내와 딸을 가슴에 묻은 가장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아마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살 직전의 모자녀 모습은 이 가족이 생활고만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단란할 수 있었을지를 잘 말해준다. 목격자들은 철로로 뛰어들기 전 아이들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엄마의 심정은 과연 얼마나 비통했을까. 억장이 무너진다.
불과 7년 전만 해도 멀쩡했던 가정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진 데는 가장의 실직이 직접적 원인이다. 전기 기술자였던 그는 구제금융 사태 이후 일상화된 기업의 인력 감축 조처에 산업 재해까지 겹쳐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한 채 이미 수천만원의 빚더미 위에 올라 있었다. 아내가 한푼이라도 보태려고 가정부, 잡부 일을 마다않고 나섰으나 삶의 밑둥이 점점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누적된 적자 가계는 이 가족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셈이다.
우리 사회의 중산층과 서민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한계 상황에 내몰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오갈데 없는 절망적인 생의 벼랑 끝으로 수많은 생명이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2007년 통계는 1996년부터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중산층은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줄어들었고, 그 열에 일곱꼴로 빈곤층으로 추락했음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자살률 1위라는 사실도 강퍅한 민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지는 이 사회 공동체는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가뜩이나 부족한 빈곤층을 위한 복지예산과 한계계층의 생계 지원비는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으로 감축돼도 좋은가. 도대체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부자를 살려야 가난도 구제할 수 있다는 궤변은 누가 만든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최우선적으로 법인세와 양도세, 소득세를 크게 깎아주고,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감면하는 획기적인 감세 조처를 내놓았다. 조처의 내용을 요약하면 자산가 계층의 부동산 보유세를 일률적으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깎아주고, 대기업의 영업이익에 대해서도 수억에서 수백억원까지 큰 폭으로 세금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재벌과 자산가 계층을 위한 조처들뿐이다. 물론 정부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부자들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줘야 경기가 살아나고 그 바람에 서민 경제도 덕을 볼 수 있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른바 규제 완화와 감세 정책이 효과를 본 것은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판이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미국밖에 없었다. 달러화가 기축통화이고 군사적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미국에서 일시적으로 가능했던 정책이었으나 그나마 연방 재정적자를 크게 늘린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됐다.
이런 논리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못 벌면 못 먹는) 한계 상황에 내몰린 빈곤 계층의 절박한 삶을 구제하는 데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 허황된 주장에 불과하다. 정책적 잘못이 검증된 밀어붙이기식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오늘의 우리 상황에 무리하게 적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으로 ‘경제만은 꼭 살리겠다’를 내세워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불평은 그래서 터져 나온다.
7년 전 미국 <뉴욕 타임스>에 부자들이 공동으로 상속세 감면 조처에 반대하는 의견 광고를 낸 적이 있었다. 부자가 살아야 가난한 이도 산다는 현 정부 발상과는 정반대로 이들은 ‘가난한 사람이 살아야 부자도 살 수 있다’는 견해를 분명히했다. 이들은 정부가 부자들의 법인세와 상속세, 소득세 등을 내려주겠다는데 이를 결단코 반대한다고 했다. 이미 부자가 잘살 수 있게 돼 있는 현행 체제를 바꾸면 일시적으로 자신들에 유리하게 할 수 있으나 결국 가난한 이들을 더 어렵게 할 것이므로 부자가 더 잘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허물어 버릴 것이고, 궁극적으로 부자들에게 도움은커녕 해가 될 것이라는 평범한 이치를 깨닫고 있었던 셈이다.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이 모조리 부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대자산가 계층을 위한 감세 정책과 부동산 관련세금 감면 정책, 수출 중심의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이 그렇고, 질 좋은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자들 자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경쟁 위주의 교육 정책도 마찬가지다.
뒤늦었지만 무너져내리는 중산층과 빈곤층을 보살피는 정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고용 창출도, 투자 확대투자도 다 좋다. 그러나 부자들이 수천만원 수억원의 감세 혜택을 받는 동안 세금을 낼 수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지원책 정도는 내놓아야 그나마 구색이라도 맞췄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이 정부가 아주 드러내놓고 부자만을 위한 정권이라는 평가를 감수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빈익빈 부익부을 부추기는 정책만 쏟아낼 것이 아니라 죽음의 철로 위에 놓인 중산층과 빈곤층의 삶도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김형배 기획위원 hbk3@hani.co.kr *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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