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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4 11:47 수정 : 2008.12.31 14:38

김형배 기획위원

[김형배 칼럼]
벼랑 끝 도시빈민과 영세 자영업자를 구하라

외환위기가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아직 그 심각성을 눈치챌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다니던 회사가 힘들다 하니 가볍게 집 나서는 기분으로 짐을 챙겨 나왔다가 다시 돌아갈 줄 았았다. 정리해고, 구조조정이란 용어도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은 듯이 보였다.

거리마다 퇴출된 이들이 넘쳐났지만 고속성장한 한국의 경제가 회복돼 언젠가 자신들을 다시 받아주리라 믿었다.

1, 2년 지나자 그 타격은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우선 경제적으로 40~50대 가장들은 낙오자가 돼 갔다. 퇴직금이 바닥나면서 아이들 학원비를 댈 수 없었고 큰아이는 학업을 중단시켜야 할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래도 그땐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몇년을 보내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희망의 끈을 놓기 시작했다. 구제금융 사태의 직격탄이 가정을 무너뜨리고 가장들을 신용불량자로 몰아 거리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노숙자 모습이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띌 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삶의 끈을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1997년 13명이던 10만명당 자살률이 이듬해 18.4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3년 22.6명, 2005년 24.7명, 지난해 24.8명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직후 대비 두 배 가까운 수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최고이다. 사망원인 가운데 자살이 차지한 순위도 8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다.

범죄도 크게 늘어난다. 먹을 것이 없어 빵을 훔치는 생계형 범죄는 21세기의 한국에서 장발장들을 크게 늘렸다. 사회와 불화하는 자신들의 울분을 빗나간 반사회적 범죄로 분출하기도 한다. 고시원에서 저소득층 출신 젊은이들이 가난한 재중동포와 함께 그 울분의 희생양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지난해 말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사태는 월가 금융위기로 급속하게 바뀌어 세계적 경기후퇴를 몰고 왔다. 가을 들어서는 본격적인 경기 퇴조로 이어지고 한국,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신생 시장 국가를 파산낼 위세로 강하게 후려치고 있다. 지난 아이엠에프 시절의 고통이 초겨울 날씨 정도였다면 이번은 규모나 강도, 그 구조적 치명성 등으로 볼 때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한국 경제의 활로라던 수출마저 꺾여 내수와 함께 퇴조길로 접어들고, 물가는 뛰어 실질임금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신규채용 중단은 물론 기존 인력조차 감축하기 시작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가 본격화하게 되면 우리 공동체는 10년 전 상황과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경제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는 것조차 사치스러울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은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한 삶의 팍팍한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사면초가의 상황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남북문제 악화는 서민들의 가슴을 더 멍들게 하고 있다. 경의선이 끊기고 개성공단의 인력이 본격적으로 철수하는 등 남북 사이에 긴장이 고조될수록 국가신인도에는 나쁜 영향을 끼쳐 분단 비용을 부풀리기 마련이다. 또한 교육정책은 국가 백년대계의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방향에서 이미 크게 빗나가 사람들 사이의 무모한 경쟁을 부추기는 잘못된 궤도를 타고 있다. 도시 빈민과 영세 농어민, 자영업자 등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교육예산이 삭감되는 만큼 그들의 희망도 꺾이는 법이다.

환율과 물가고로 서민의 삶이 더욱 어려워진 것은 1인당 국민소득이 크게 줄었다는 3일 통계 발표로도 드러났다. 서민들에게는 이 어려운 때 그저 살아남는 것, 벌거벗은 몸을 추위로부터 가리는 것이 가장 급한 절체절명의 과제가 됐다.

서민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참으로 힘든 세월 앞에 여야는 머리를 맞대고 파탄 직전에 이른 백성의 삶을 구해야 한다. 야당과 재야단체들이 결성한 민생민주국민회의가 4일 경제위기와 민생고 극복을 위한 연석회의를 연다고 한다. 이럴 정도인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획기적인 서민 안정 대책이 시급하게 나와야 한다. 큰 추위가 닥치는 겨울을 앞두고 먹고살 길이 막막한 최악의 삶의 조건들이 그들을 가로 막고 있다.

김형배 기획위원 hbk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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