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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소설가 이원호의 소설은 현대판 무협지다. 기업이건 소설이건 연애건 독자들이 원하는 판타지를 노골적이고 솔직하게, 그리고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그린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욕망에 찌든 현대인의 자화상이 숨어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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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열광과 혐오의 경계인’ 대중소설가 이원호
잘나가던 사업가, 마흔셋 나이에 부도나 알거지수배중 “자서전 하나 쓰고 죽자” 맘먹고 첫 소설
구치소 들어가보니 ‘밤의 대통령’ 대박작가로 ‘강안남자’ 비난 의기소침…술집공부는 많이 했지
두시간이면 원고 20장…골프도 시간 아까워 안쳐
대중문학 일본책에 다 내줘…나라도 거름 돼야지 중동에 섬유를 수출해 한 달 100만달러를 주무르던 마흔세살 사업가는 1990년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다. 걸프전으로 중동 거래가 중단되는 바람에 부도가 난 것이다.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다니던 그는 다단계판매회사에 들어가 200만원짜리 자석요를 팔러 한 선배를 찾아갔다. 선배는 그에게 물었다. “원호야, 너 이거 효능 아냐?” “모릅니다.” “이거 팔면 얼마 남냐?” “30% 남습니다.” “그거 줄게 안 사면 안 되냐?”
“…주세요.” 돈을 받아들고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사업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문득 창 아래를 내려다봤다. ‘확 떨어져 죽어버릴까.’ 7층에서 뛰어내리면 완전히 박살나 죽을 것 같았다. 몇 층 내려가서 보니 이번엔 설죽을 것 같았다. 위아래를 30분 정도 오가던 그에게 갑자기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억울하니 자서전이나 쓰고 죽자.’ 대학 시절 문학상을 두 번 받았던 왕년의 문학청년은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빚쟁이를 피해 숨어서 한 달 만에 쓴 책이 운좋게 출판되어 그는 수배 중에 데뷔를 한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 사업가가 ‘한국 통속대중소설의 지존’ 이원호(61)다. 그를 보면 소설가가 되는 유전자는 분명 따로 있는 것 같다. 졸지에 망해 엉겁결에 소설가가 된 뒤로 지금까지 18년 동안 그의 소설은 900만부가 팔렸다. 이른바 ‘재야의 이문열’이다. 도서대여점 덕에 뜬 최고 수혜자이자, 빌려 보는 바람에 책이 덜 팔린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제 대여점은 사라지고 있지만 이원호의 소설은 건재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18년째 재미 하나로 버텨왔다는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책은 광고를 하는 법이 없다. 그래도 찍기만 하면 2만부는 바로 팔린다고 출판사는 귀띔한다. 지명도로만 보면 그는 2000년대 이후 더 유명해졌다. 열광과 혐오를 동시에 부른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 덕분이다. 중년 남성들을 정확하게 겨냥한 ‘성적 판타지’로 논란을 일으킨 이 소설로, 그를 도색작가로 여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의 은둔주의다. 사람들의 비판을 즐기듯 연재소설의 표현 수위를 올리고 내리면서 독자들과 심리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단행본 소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올해 펴낸 책만 4종 9권. 곧 새 소설 <무반>이 나올 예정이어서 한 해 펴낸 책이 두자릿수를 넘길 전망이다. 이쯤 되면 소설 쓰는 기계다. -인천공항 서점에서 가장 책이 많이 팔리는 소설가라고 들었습니다. “제 책이 킬링타임용이니까요. 도착지 공항에 가보면 쓰레기통에 다 읽고 버린 제 책이 많을 거라고 농담하곤 합니다. 잘 팔리는 책, 재미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 장사를 해야겠다는 마인드가 강해요.” -판매량도 많지만 참 많이도 쓰십니다. “인터뷰한다고 세보니까 47종 160권을 썼습니다. 1년에 7~8권은 쓰고, 신문 연재도 2곳에 하고 있고…, 하루에 원고지 50장씩 씁니다. 하도 많이 쓰니까 대리작가를 쓴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첫 소설 다음에 낸 <밤의 대통령>과 <황제의 꿈>은 당시 정말 인기였습니다. 감옥에서 썼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부도가 나서 1년을 기소중지 상태로 도망다녔어요. 그때 그냥 한번 쓴 자전적인 소설을 보고 누가 알음알음으로 연락해 왔어요. 강금실씨(전 법무부 장관) 전남편이었던 출판사 이론과실천 김태경 사장이었는데 소설을 하나 써보라는 겁니다. 그때가 노태우 정권 말기였는데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짜증나는 시절이었어요. 뭔가 화끈하게 대리만족 시켜주는 소설을 쓰자, 그래서 전국구 조폭들 이야기로 <밤의 대통령>을 썼어요. 두 달 만에 1부 세 권을 썼어요. 또 내가 기업도 했겠다 기업소설도 한번 써보자 그래서 무역 영업맨 이야기인 <황제의 꿈>을 같이 쓴 거죠.” 90년대 만화방을 찾던 성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빌려 보는데도 두 소설 모두 300만부 가량씩 팔렸다. 소설을 내고 얼마 뒤 그는 불심검문에 걸려 구치소에 들어갔는데, 출판사에서 인세로 빚을 갚아줘 풀려나왔다. 그 뒤로 엄청난 인세 수입으로 빚을 갚아나가는 길고도 오랜 탕감기가 시작됐다. 그는 신문 연재 고료를 현찰로, 그것도 1년 단위로 한번에 받는다. 초기 월별로 받을 때 가압류당했던 기억이 남아서라고 한다. -기존 이원호 팬들은 <강안남자>가 오히려 생소했을 것 같습니다. “<강안남자>로 이미지가 고착되는 걸 탈피하고 싶기는 합니다. 그래도 제 브랜드가 높아지는 것은 좋은 거죠. 어찌 됐든 제 소설이 신문에 실리는 게 감사해요.” -<강안남자>가 선정적이어서 처음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요즘에도 노골적인 성애묘사가 좀 심하다 싶던데요. “워낙 호오가 분명하니까…. 저는 이 소설이 나른해질 오후 무렵 남성 독자들에게 활력을 주고자 했어요. 처음에는 하도 욕을 먹어서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는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인터넷에 누가 ‘이원호 이 새끼 아직도 영창 안 갔냐’고 써놨기에 제가 ‘예, 아직 안 갔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욕을 먹든 안 먹든 읽게 만드는 것이 힘인 것 같습니다. 대중들에게 먹히는 글쓰기법이 있습니까? “전 묘사를 안 해요. 제 소설은 생각하는 게 없습니다. 대화와 행동으로 표현하는 거죠. 끊임없이 장면이 바뀌어 정신은 없겠지만 질리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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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대통령‘ 소설가 이원호.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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