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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종 지라니문화사업단 회장이 케냐 빈민촌 아이들에게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 만든 지라니합창단 어린이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앞에 서 있다. 아프리카 최초의 어린이합창단인 지라니합창단은 쓰레기 마을이라는 뜻의 ‘고로고초 마을’ 아이들로 구성됐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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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임태종 지라니문화사업단 회장
쓰레기 더미에서도 꽃은 필까? 악취 나는 침출수가 흘러나오는 폐기물에 뿌리내리는 꽃이 있을까? 한 목사가 이 쓰레기 더미에 음악의 꽃씨를 뿌리고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꽃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임태종(58) 지라니문화사업단 회장은 2006년 8월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동쪽 단도라 지역의 고로고초를 찾아갔다. 쓰레기장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세계 최대의 빈민촌인 이곳에 감리교 목사인 임 회장이 간 것은 고로고초 어린이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쓰레기 뒤져 사는 고로고초 참상에 충격아프리카 첫 어린이합창단 꾸리기 도전 악보는커녕 글도 못 읽던 이들 깜짝 변신
“빵보다 희망…대학까지 책임지고 싶어요” 고로고초 마을이 있는 단도라 지역은 쓰레기 소각과 침출수로 심각하게 오염된 빈민가다. ‘고로고초’란 이름 자체가 스와힐리어로 ‘쓰레기’란 뜻이다. 이곳에 사는 10만명 주민들은 쓰레기 속에서 재활용품을 찾아 하루 2달러가 못 되는 수입으로 생계를 꾸린다. 동네 아이들 가운데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겨우 3분의 1 정도. 악보는커녕 글자도 못 읽는 아이들로 합창단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1년 조금 넘게 지난 2007년 11월, 임 회장은 스와힐리어로 ‘좋은 이웃’이란 뜻인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잠보>(‘안녕’이란 뜻) 같은 아프리카 노래부터 <생명의 양식> 같은 라틴어 성가까지, 아이들은 거의 완벽한 화음으로 청중을 놀라게 했다. 지난 연말에 이들은 다시 한국을 찾았고, 이번에는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 지라니합창단은 유럽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교육 기회조차 못 얻은 어린이들이 어떻게 환상적인 화음을 자랑하는 아프리카 유일의 소년 합창단으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서울 양재동 지라니문화사업단에서 임 회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아프리카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자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습니까? “합창단을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해외 봉사활동 엔지오인 굿네이버스의 이사인데 2005년 12월 아프리카를 돌아보게 되어 케냐를 갔다가 고로고초 마을에 들렀습니다. 20년 가까이 외국 선교를 하면서 험한 꼴을 많이 봤는데 정말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기에 그렇게 놀라셨나요? “거기 쓰레기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옛날 난지도는 명품이죠. 쓰레기가 여의도보다 넓게 펼쳐져 있고 하늘에는 털 빠진 독수리들, 땅에는 돼지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 한 남자애가 본드를 했는지 눈동자가 풀려선 쓰레기를 먹고 있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돌아온 뒤에도 계속 그 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 방법을 찾으려고 석 달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노래’였다. 엉뚱해 보일 수도 있는 결론이었지만, 그는 아이들에게 빵보다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꿈을 찾아야만 인간의 존엄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노래만으로 아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노래를 한다고 존엄성이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교를 하려고 아이들에게 노래를 시키면 그건 앵벌이죠. 두 번 죽이는 고차원적인 범죄입니다. 그걸 넘어서야죠.” -어떻게 넘어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변성기가 지나면 아이들은 어린이합창단에서 노래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몇 년 뒤 그냥 내보내면 이들의 삶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합창단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내주려고 해요. 아이들이 자신의 어려운 경험을 바탕으로 남을 이끌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책임을 져야 자신감과 희망을 갖고 노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까지 보내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 텐데요. “적어도 1년에 1억5천만원이 필요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저기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하기 전 울산 감리교회에서 16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그곳 최찬웅 장로가 제 이야기를 듣더니 사흘 뒤 1억5천만원을 입금해 주셨습니다.” -1년치 비용은 모아졌군요. 나머지를 모을 방법은 찾았습니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어요. 지난 연말 한양대에서 공연을 했는데, 공연을 본 한양대 김종량 총장이 합창단 어린이가 한양대에 유학을 오면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지난해 6월 미국 일리노이주 오타와에서 공연할 때도 그곳 대학에서 비슷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국내외 대학들이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아이들이 쓰레기장 빈민촌 출신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지라니 합창단이 들려주는 때묻지 않은 목소리와 화음에 갈채를 보낸 것이다. 지난해 6월 10회로 짰던 미국 공연은 무려 35회로 연장됐다. 임 회장은 아이들을 놀라운 음악가로 만든 공을 모두 지휘자 김재창씨에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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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종 지라니문화사업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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