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7.04 17:33
수정 : 2010.07.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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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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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피의자를 끔찍하게 고문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서울 양천경찰서의 경찰관 네 명이 구속됐다. 고문은 과거 독재시절의 유물인 줄 알았는데, 민주화 이후에도 고문이 자행되다니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 고문 사건은 서울경찰청의 잘못된 성과평가제도에 기인한다고 어느 경찰서장이 비판을 제기했다가 바로 직위해제되어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경찰청에서는 범죄별로 점수를 정해서 실적 경쟁을 부추겨왔음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살인은 50점, 강도살인은 70점, 절도는 20점, 이런 식이다. 서울경찰청은 산출된 점수에 따라 산하 31개 경찰서를 가, 나, 다 세 등급으로 나누고, 등급이 낮은 경찰서 간부들을 상대로 감찰조사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반드시 성과주의, 실적주의의 산물인가 하는 것은 논쟁거리가 될 만하다. 서울경찰청의 다른 경찰서에서는 고문이 없지 않으냐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지나친 성과주의가 없었더라면 그렇게까지 고문을 했겠느냐 하는 반론도 있다. 고문과 성과주의 사이에 인과관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상관관계는 분명히 있어 보인다.
비슷한 성과주의가 한국 대학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교수들의 업적을 논문, 발표, 사회봉사 등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수십개 지표를 만들어 점수를 매기고, 연봉을 차등지급하고 있다. 점수를 통해 교수들을 관리, 통제하는 양태가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러더’를 연상시킨다. 성과주의는 원래 미국의 산물인데, 미국 대학에서도 성과 평가는 하지만 우리처럼 양적 평가, 점수 평가가 아닌 질적, 종합적 평가를 한다. 그리고 그 평가를 놓고 교수와 학과장이 토론을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오로지 양적 평가, 위로부터의 일방적 평가가 있을 뿐이다.
미시간공대에서 최우수교육자상을 수상한 조벽 교수는 강의 잘하기로 유명한 교수다. 그는 교수들의 성과 평가에 기초한 연봉제는 교수들 사이에 동료의식을 없애고 개인주의를 조장하며 논문 쓰기에 쫓겨 강의를 무시하는 등 장기적 부작용이 너무 크므로 한국에서는 채택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 대학에서는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인간적이고 불합리, 불공평한 성과주의와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어서 그 부작용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성과주의는 인간으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를 잘 선정해야 하고, 평가가 합리적이고 공정해서 조직 구성원들의 흔쾌한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경찰과 대학의 조악한 성과주의는 득보다 실이 많은 잘못된 제도다. 인간은 점수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두뇌는 훨씬 고차원적이며, 인간의 자존심을 살려줄 때 인간은 진정 열의를 갖고 일한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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