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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6 18:24 수정 : 2009.01.16 18:24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백승종의 역설

홍길동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다. <실록>에 기록된 대로라면 그는 연산군 때 충청도를 무대로 날뛴 도적의 우두머리였다. 이 고을 저 고을을 분탕질하고 다닌 홍길동 무리 때문에 조정 대신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나 누가 밀고라도 했던지, 또는 조정의 계략에 넘어갔던지 “강도 홍길동”은 1500년(연산5) 10월 중순 관헌에 체포되었다. 그 뒤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따로 기록된 바는 없지만 사형을 당한 것이 틀림없다. 당시 상황은 심각했다. 당상관의 지위에 있던 무신 엄귀손이 홍길동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곤욕을 치를 정도였다.

이렇게 홍길동은 이미 죽었건마는 후세 사람들은 그를 살려냈다. 옛소설 <홍길동전>은 왕조의 압제에서 민중을 구하는 영웅으로 그를 재창조했다. 의적 활빈당을 이끌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탐관오리를 엄벌하는 홍길동을 누구나 정의의 사도로 알게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각지의 도적들조차 활빈당을 자처했을 정도로 그의 인기가 높았다.

이번에 체포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시민들은 홍길동에 비긴다. “기는 만수 위에 뛰는 백수”라는 말이 나돈 지도 오래다. 미네르바의 경제 분석력은 탁월했다. 하지만 이 정부의 경제팀은 무능한 주제에 ‘강부자’만 감싸고 도는 못된 사람들이라는 게 많은 시민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미네르바가 인기를 끌었다. 수사압박 때문에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그의 활동은 계속 이어졌다. 끝내 정체가 불투명했던 그의 활약상을 바라보며 시민들은 의적 홍길동의 신출귀몰한 재주를 떠올렸을 법도 하다.

이것은 일종의 홍길동 증후군이다. 따지고 보면, 오랜 세월 우리가 때때로 그리워한 홍길동은 역사적으로 실존한 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출구가 막힌 현실의 우울함을 이겨내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이었다. 바로 그 점에서 미네르바는 홍길동의 또다른 이름이다. 끝내 소중한 것은 희망이요, 대안이다.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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