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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3 18:03 수정 : 2009.01.23 18:03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백승종의 역설

설이 코앞에 닥쳤다. 이 나라의 새해 운수가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주역> 64괘 가운데 두 개를 뽑아 보았다. 먼저 나온 것은 박괘(剝卦)였다. 이것은 산이 땅에 붙어 있는 형상이다. 나중에 뽑힌 것은 익괘(益卦)였다. 위를 덜어 아래를 두텁게 하는 모양이다. 이 두 괘는 과연 무슨 뜻일까.

책을 뒤적이다가 마침 주자의 해석을 발견했다. 주자는 박괘를 자기 나름으로 풀이했다. 산은 땅에 붙어 있다. 산 아래 땅이 두껍게 쌓일수록 산꼭대기가 높고 평안하다. 임금도 그와 같다. 인심이 두터워야 한다. 그리하여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만 보위가 평안하다. 익괘의 뜻은 더더욱 명확하다. 위를 덜어내어 아래를 채워주면 상하가 안녕하다. 만일 그와 반대로 하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다. 나라가 망한다. 요컨대 내가 뽑은 기축년 이 나라 운수는 위정자가 민심을 잃지 않게 애써야 한다는 교훈이다. 위를 덜어 아래를 채우려는 노력이 없다면 큰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조선 말기 나라가 어려워지자 어떤 재상은 이용후생을 강조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그 가운데 유익한 말이 있다. 만일 이 백성이 편안히 생업에 종사할 수 없어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면, 전하께서는 썩은 새끼줄로 묶은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계신 것처럼 위태해질 것입니다. 본래 정치란 그와 같은 것이라 중국 고대에 무왕이 경고했다. “우리를 어루만져 주면 임금이다. 허나 만일 우리를 학대하면 원수다.”

엊그제 용산에서 경찰 특공대에 내몰린 철거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공권력을 동원해 한겨울에 가난한 시민들을 길거리로 내몰다 생긴 끔찍한 일이다.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위정자들은 아래를 덜어 위를 채우는 나쁜 일에 익숙한 것은 아닐까. 우연히 내가 뽑은 두 괘의 뜻을 살리려면 거꾸로 가야 한다. 위를 덜어 아래를 보태야 한다. 그래야 권력의 산도 안 무너진다.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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