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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3 19:10 수정 : 2009.02.19 14:22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백승종의 역설

정조가 대신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 무더기로 공개되었다. 왕이 한 사람의 대신에게, 그것도 반대파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온 사람에게 300통이나 되는 편지를 보냈다니 충격적이다. 더욱이 편지 속의 정조는 다분히 정략적이다. 입에 담기 곤란한 욕설도 섞여 있다. 이들 편지로 ‘성군’ 정조의 이미지는 도전에 직면했다.

그럼 이제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조라면 무조건 떠받들던 일종의 신격화 놀음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다행이다. 편지와 더불어 인간 정조는 우리 곁으로 한 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정조의 성격이 격했다는 사실은 꽁꽁 숨겨진 비밀이 아니었다. <정조실록>을 꼼꼼히 읽어보면 누구라도 곧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었다.

공개된 편지에 나타난 정조의 일상은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점철되었다. 왕은 밤늦도록 구중궁궐에 홀로 앉아 통치전술을 짜느라 번민했다. 왕이 비단 심환지에게만 비밀편지를 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채제공을 비롯한 여러 정파의 대신들과도 비밀스런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처럼 왕이 비밀편지 또는 비밀협상을 좋아했다는 단서는 실록에도 적지 않게 보인다. 그동안 학계는 이 점을 소홀히 다뤘다. 그러나 이번에 비밀편지가 공개된 것을 계기로, 정조의 통치술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권력자의 잦은 비밀편지는 도리어 정치생명을 해칠 수 있다. 비밀편지가 그의 정규적인 도구가 되고 만다면, 공권력이 공명정대하게 집행되기 어렵다. 공식 석상은 한낱 꼭두각시들의 공연장이 되고 말며, 지배 권력은 권력자와 그의 부하들 간의 사적 흥정거리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내 보기에 정조는 아마도 비밀편지를 지나치게 남용한 것 같다. 그리하여 막후정치를 즐기던 그가 죽자, 정계에 후폭풍이 거세게 일었다. 그 끝은 문제 많은 세도정치의 전개였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음성/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것도 되풀이할 일이 못 된다.

백승종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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