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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4 22:33 수정 : 2009.04.24 22:33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백승종의역설

나중에 그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 되었다. 김춘추는 외교 수완으로 난세를 헤쳐나간 걸물이었다. 그는 사신이 되어 고구려, 일본 및 당나라를 오갔다. 특히 당나라를 수차례 왕래하며 나당연합의 물꼬를 텄다.

백제를 견제하는 것이 김춘추의 목적이었다. 백제가 신라의 전략 요충지 대야성을 깨뜨렸기 때문에, 신라의 위기감은 커졌다. 김춘추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도움은커녕 영토 문제를 이유로 감금당했다. 이런 수모를 겪자 김춘추의 시선은 한반도 바깥을 향했다. 그는 공연히 당나라를 끌어들인 것이 아니었다. 결국 당 태종은 대군을 보내 신라와 함께 백제를 치게 했다. 김춘추의 아들 문무왕은 재차 나당연합군을 결성해 고구려까지 멸망시켰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왜 하필 신라가 통일했으며, 그때 왜 외세를 끌어들였는지를 반문한다. 하지만 이것은 김춘추의 나라 신라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당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그치자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들었다. 신라의 힘은 당나라보다 훨씬 약했지만 끝내 굽히지 않았다. 신라는 고구려의 부흥 운동까지 이용하는 등, 온갖 수단 방법을 다해 싸웠다. 결국 김춘추의 후예들은 당나라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했다. 아직은 민족이란 근대적 개념조차 없었던 때다. 신라가 누구의 도움을 빌렸든지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다. 신라의 외교적 수완은 대단해서, 서먹했던 당나라와의 관계도 금세 회복됐다. 통일 후 120년 동안 신라는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기회는 늘 위기 속에 숨어 있다. 매사에 강대국의 눈치부터 살피는 것은 망종들의 못된 버릇이다. 피에스아이에 가입하느냐, 개성공단을 건지느냐 하는 문제로 여론이 들끓지만, 이것은 집권 초부터 대북정책을 포기한 이 정부의 실책에서 파생된 문제다. “북한은 고구려가 아니다. 미국도 당나라는 아니다. 너희 적은 내부에 있다!” 김춘추의 성난 음성이 귓가를 맴돈다.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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