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8 19:04
수정 : 2009.05.0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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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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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의역설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유적지에서는 청동제 촛대가 적지 않게 출토되었다. 인류는 이미 기원전부터 촛불을 사용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초는 납밀 또는 납촉이라 했다. 꿀 찌꺼기인 밀랍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양 중세에는 짐승의 기름, 특히 쇠기름으로 초를 제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촛불은 어느 종교에서든 중요시된다. 가령 불교식 공양에서 촛불은 여러 가지 향이나 꽃과 함께 불전에 바치는 가장 대표적인 공양물이다. 촛불은 부처의 지혜와 불법의 광명을 상징한다. 타이에서는 예로부터 우본 라차타니 촛불행렬 축제를 해마다 거행한다. 행사에 참가하는 불교신자들은 미리 초를 준비해 두었다가 스님들에게 공양한다. 기독교에서도 촛불은 신과 구세주의 광명을 상징하므로, 성전의 제단에는 반드시 촛불이 봉헌된다. 각종 야외행렬에도 촛불은 빠지는 법이 없다. 유대교도들 역시 안식일을 전후해 촛불을 켠다.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도 촛불이 없는 기도나 굿은 상상할 수 없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촛불은 이성을 상징하는 빛이 되었다. 시민들은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광장에 모여 촛불시위를 한다. 그들은 촛불이라는 평화적 수단을 빌려 침묵 속에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 시작은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유럽의 브라티슬라바 시민들은 촛불시위를 열어 공산지배체제를 반대했다. 결국 공산체제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촛불시위는 7년쯤 전 한국 사회에도 뿌리를 내렸다. 촛불은 점차 평화적 시위문화의 대명사가 되었고, 세상을 바꾸는 조용하고 위대한 시민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작년 이맘때 전국으로 번진 촛불은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서두르는 정부의 섣부른 태도에 쐐기를 박았다. 촛불에 놀라서일까. 이 정부는 촛불이 모이기만 하면 군홧발로 짓이긴다. 이제 이 도령이 <춘향전>에서 읊었듯, “흐르는 촛물은 백성의 눈물”이 되었다.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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