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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2 22:02 수정 : 2009.05.22 22:02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백승종의역설

배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인간적 배신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 배신, 신앙상의 배신도 있다. 업무상의 배신행위도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중세까지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배신은 그저 배신이었다.

그때는 설사 배신을 통해 국가에 공을 세웠다 해도, 당사자를 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세조가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되자, 성삼문과 김질 등은 단종 복위를 꾀했다. 그러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형편이 되었다. 약삭빠른 김질은 동지들을 밀고해 피비린내 나는 사육신 사건을 일으켰다. 김질은 결국 세조의 공신이 되었고 벼슬도 높아져 정승까지 지냈다. 조정에서는 혹시 충신 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세상인심은 끝내 못 얻고 죽었다.

히틀러의 독일은 수년 동안 프랑스를 지배했다. 상당수 문인과 지식인 및 관료들이 그때 조국을 배신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앙드레 지드 같은 이들이 앞장서 배신자들을 단죄했다. 가령 신문·잡지만 해도 총 900여종 가운데 무려 700종이 나치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폐간당했다. 일제 식민지 35년이 끝난 뒤, 이 땅의 배신자들이 여전히 대접받고 산 것과는 너무 달랐다. 배신도 자랑이 되는 나라라서 그런가. 요즘은 늙은 소설가까지 나서 세상을 조롱하며 권력에 아부한다.

이 배신자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그 답은 <구약>에 있다. 고대 유대민족은 야훼를 제외한 일체의 ‘우상숭배’를 금했다. 하지만 이집트며 바빌로니아와 같이 강성한 이웃이 있어, 조상의 종교를 내팽개친 유대인도 많았다. 유대공동체는 이런 배신자들도 감싸 안았다. 언젠가 그들이 유대공동체의 품으로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묵묵히 기다렸다. 이스라엘 민법에는 아직도 그 전통이 남아 있어, 누구든 유대교로 복귀하면 과거를 묻지 않고 시민권을 되돌려준다. 배신자여, 구구히 변명 마라. 회심을 우리가 기다려 주마.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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