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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9 20:51 수정 : 2009.05.29 20:51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백승종의역설

찬반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반대론이 압도적인 듯했지만 찬성론 역시 무게가 있다. 그리스 철인 헤게시아스는 개인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 논리는 정연했고 설득력도 컸기 때문에, 강연 금지령으로 맞선 나라도 있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도 자살은 죄악이 아니라고 논증했다. 실제로 로마 사회에는 구차하게 살기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귀족들이 많았다. 이름난 정치가 브루투스도 막판에는 자살로 명예를 지켰다.

세상 모든 종교는 자살을 반대한다. 그래도 예외는 있다. 유대인들이 로마 침략으로 나라를 잃게 되었다. 그때 마사다 요새에서 항전하던 유대인들은 끝내 항복하지 않았다. 무려 천명이나 되는 유대인이 한꺼번에 자살했다. 그들의 후예에게 이 사건은 디아스포라의 시작을 알리는 숭고한 순교였다.

때로 자살은 의미심장한 사회적 반항이거나 공동체를 위한 의로운 죽음으로 기억된다. 사육신 유성원은 단종 복위에 실패하자 아내와 함께 자살했다. 임진왜란 때 물밀듯 밀려오는 왜군에 맞서 싸우던 신립도 패전의 슬픔을 안고 탄금대에서 몸을 던졌다. 우여곡절 끝에 500년 종묘사직은 무너졌고, 그때도 의로운 선비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연이어 자결했다. 고귀한 죽음은 현대까지 이어졌다. 의롭고 양심적인 시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독재를 추방하기 위해서 몸을 던지거나 불살랐다. 종종 다른 나라에도 있는 일이다. 한때 베트남 스님들도 부정부패한 매판정권을 꾸짖으며 연달아 분신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주장했듯, 만일 우리가 자연 질서에 절대 순종하기로 하면 병을 치료하는 것도 자살 못지않은 죄악이 된다. 흄의 입장에 선 니체는 인간에게 “제때” 죽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이 과연 옳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결코 비난거리가 아니다. 사실 그분의 죽음은 추악한 정치 현실을 고발한 순교다. 순박하고 정직한 그를 죽게 만든 현 정권은 역사의 죄인이다.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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