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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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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는 현대 독일사회는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애써 노력한다. 그들은 언론기업의 조직과 회계 및 활동 전반을 철저하게 감시 규제한다. 결과적으로 언론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가령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일간지인 <빌트>만 해도 정치색이라곤 전무하다. 그저 연예 및 오락용 신문일 따름이다. 방송 산업에서도 시장의 독점은 절대 허락되지 않는다. 대규모 언론기업이 있다 해도, 그 시청률이나 정치적 영향력은 대수롭지 않다. 이는 독일 시민사회가 여론의 다양성을 지키려고 백방으로 힘쓴 결과다.
일단 대규모 언론기업이 등장하면, 그들의 시장독점을 막기가 어려워진다. 정치적인 부작용 또한 피할 수 없다. 일반 시민들은 그들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조작한 정보에 휩쓸려, 사태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연전에 이탈리아에서 언론기업가 베를루스코니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의 정치적 승리는 여론 조작의 결과였다. 이런 비판이 한때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얼마든지 일어날 법한 일이다.
그럼 지금 이 나라는 어떤가. 민주주의의 뿌리가 취약한 우리를 이탈리아와 견주는 것 자체가 무리다. 몇몇 보수 매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시장을 독점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데도 집권 여당은 변칙적인 수단을 써가며 새 미디어법을 억지 통과시켰다.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새 법은 친정부 언론기업가에게 특권을 보장해 주는 장치일 뿐이다. 반드시 무효화되어야 할 법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칠흑보다 어둔 밤을 맞으리라.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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