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7 22:12
수정 : 2009.08.0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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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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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의역설
구한말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애국’과 ‘계몽’이 그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방방곡곡에 신식 학교가 세워져 젊은 세대에게 시대적 사명을 일깨웠다. 신식 학교에서 역사 과목은 애국계몽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때 역사교과서는 지식 전달의 단순한 매체 이상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도구였다.
그 무렵에도 <조선약사십과>(朝鮮略史十課) 등 요즘의 국정 교과서에 해당하는 책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검인정 교과서도 다양했다. 현채가 쓴 <동국사략>이라든지, 유근의 <초등본국역사>(初等本國歷史) 등이 잇따라 출간되었다. 한때는 검인정 교과서의 인기가 꽤 높아, 서울에는 ‘신문관’과 ‘광덕서관’ 등 검인정 교과서를 전문으로 발간하는 출판사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을사조약과 한일합병을 거치면서 저들의 압박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전근대에도 역사교과서라 할 만한 책들은 많았다. 그중 가장 널리 전파된 것은 <통감절요>다. 이 책은 송나라 때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을 간추린 것으로, 학동들에게 역사 및 한문을 가르치는 교과서 구실을 했다. 15세기에는 한국판 <자치통감>인 <동국통감>이 편찬되어 각광을 받았다. 이들 전근대의 역사책들은 하나같이 당시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유교적 도덕과 명분을 강화할 정치적 목적에서 편찬되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역사교과서 집필 지침(안)’도 역시 정치적인 것이다. 다만 정부 안은 보편적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한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주입”하려 든다는 혐의가 짙어, 공동체의 이익을 꾀한 애국계몽 차원의 역사정치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이념의 “주입”은 세계 역사학계가 이미 폐기처분한 것이다. 역사교육은 민주시민, 즉 개인이 독립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쟁점을 활발하게 토론하는 가운데 학생 스스로 “역사적 사고”를 터득하게 돕는 것이다. 특정한 역사관의 주입은 결코 허용돼선 안 될 시대착오다.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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