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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14 19:51 수정 : 2009.08.14 19:51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1945년 8월15일 정오, 라디오를 통해 히로히토는 포츠담 회의 결과를 무조건 수용한다고 말했다.(미국 날짜 8월14일) 그 며칠 전에는 일본에 원폭 투하가 거듭됐다. 일제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워싱턴 주재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투항 의사를 밝혔다. 항복 소식이 전해진 그날을 미국에서는 보통 일본에 대한 승전일로 기념한다. 침략전쟁의 원흉 일본도 이날을 종전기념일로 삼았다. 저들의 압제에서 풀린 우리는 그날을 광복절, 북한에선 민족해방 기념일이라 부른다.

선열들은 광복다운 광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여운형 등은 광복 당일 건국준비위원회를 꾸려, 조선총독부의 행정권 인수에 돌입했다.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중국에서 광복을 맞은 임시정부 주석 김구도 보통선거로 뽑힌 선량들이 임시정부의 전통을 제대로 잇기 바랐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자유, 평화 및 정의가 넘쳐흐르는 민주국가가 태어나기를 희구한 것이다.

그러나 광복은 껍데기 광복이었다. 일제의 무장해제를 이유로 미·소 양국 군대가 진주했다. 그때 미국은 한반도 분할을 목적으로 여러 차례 계획을 세웠다. 그 최종안은 38선이었고, 이것은 훗날 국무장관까지 지낸 딘 러스크 중령의 작품이었다. 일제를 쫓아낸 뒤에도 미·소 양국은 그대로 주저앉아 신탁통치를 할 참이었다. 이에 우리는 격렬히 저항했고, 결국엔 남북한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섰다. 그들은 불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했다.

우리는 아직도 분단이라는 역사의 부채를 청산 못 했다. 지난 정권만 해도 남북을 부지런히 오가며 대화의 통로를 열기 바빴다. 그러나 이 정권은 그마저 먹통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은 광복절. 선열들이 애타게 바라던 광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건만, 뉴라이트의 낡고 편향된 이념에 푹 젖은 이 정권은 작년의 건국절 타령에 이어 이제 역사교과서마저 왜곡할 모양이다. 참, 잘도 하는 짓이다.

백승종 독일 보훔대 한국학과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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