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0.09 18:26
수정 : 2009.10.0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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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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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국정 최고 책임을 맡은 관리를 재상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그 범위가 넓어 중앙관서에서 벼슬이 정3품 이상인 고관들을 재상이라 불렀다. 그래도 재상 중의 재상은 역시 영의정, 좌의정 및 우의정으로 불린 3정승이었다. 구한말에는 영의정을 총리대신이라 개칭하기도 했다. 총리대신이란 자리는 본래 1625년,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처음 설치한 것이다. 그 뒤 서양 여러 나라가 이 제도를 본떴는데, 이 직책이 근대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은 18세기 영국에서였다. 메이지 유신 때부터 일본도 총리대신을 두었다. 우리나라는 상하이(상해) 임시정부 때부터 공화국을 지향했기 때문에 그 명칭을 약간 바꿔 국무총리라 불렀다.
국무총리는 과거의 재상에 못지않게 국정에서 비중이 높다. 아무나 함부로 차지할 자리가 절대 아니다. 옛날에도 재상감을 고를 때는 요건과 자질을 두루 따졌다. 가령 실학자 최한기는 기품과 마음씨, 용모와 식견 및 행동거지가 모두 최상이어야 재상감이 된다고 했다. 조선 건국의 주역 정도전은 재상의 자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 요점은 왕이 틀렸다고 고집하더라도 재상은 옳으면 옳다고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중국 송나라 때 대학자 주희(朱熹)는 왕이 재상을 고를 때는 장차 자신을 혹독하게 비판할 것이 예측되는 강직한 신하를 택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런 것들은 그저 옛말에 지나지 않는 것 같지만,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 국무총리는 품성과 도덕성도 뛰어나야 하겠지만 예스맨이어서는 곤란하다.
추석 전 새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청문회에서 그 후보자가 저지른 불법행위들이 적잖이 드러났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문제될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심지어 새 총리의 임명이 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조치라는 말까지도 나왔다. 이런 말 믿을 사람 별로 없다. 총리의 어깨는 절로 무거울 것이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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