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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06 18:23 수정 : 2009.11.06 18:23

백승종/역사학자

“조령 이남에서 교화를 일으키고 정령(政令)을 거행하며, 벽촌 서민들의 실정을 고려해 그들의 생업을 돌봐주라. 또한 각 고을 수령들의 업무평가와 세금을 골고루 부과하는 일이며 형벌을 신중하게 시행하는 일체 사무도 경의 전단(專斷)에 맡기노라.” 1542년께 중종이 새로 경상도관찰사가 된 어느 신하에게 내린 <교서>(敎書)의 일부다.

교서란 국왕이 고위 관리에게 주는 일종의 명령서다. 거기에는 신하에 대한 국왕의 신뢰가 표현되어 있고, 그에게 부여된 책무의 막중함을 일깨우는 언사가 간곡하게 서술되기 마련이었다. 왕은 나라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도 교서의 이름을 빌려 일종의 담화문을 발표하곤 했다. 그런데 교서를 왕이 직접 짓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방금 소개한 교서만 해도 실은 퇴계 이황이 중종을 대신해서 지어 올린 글이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홍문관 교리 이황이 쓴 <교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관찰사에게 “전단”의 권리, 즉 전결권을 부여한 대목이다. 물론 왕이 허락한 관찰사의 재량권에도 일정한 한계는 있었다. 가령 관할 지역 안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거나 통정대부(정3품) 이상의 고위 관리가 처벌 대상이 될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왕에게 아뢰게 되어 있었다. 이런 제한규정은 조선시대의 어느 교서에나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조항이었다.

나랏일은 왕 혼자 감당할 수가 없었다. 지방마다 풍속도 달라 설사 조정에서 훌륭한 계획을 세웠다 해도 함부로 밀어붙여서 될 일은 아니었다. 국체(國體)를 바로 세우려면 우선 지방관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재량권을 인정하는 것이 순리라는 믿음은 퇴계를 비롯한 조선 성리학자들 모두의 신념이었다. 오늘에 비추어 보아도 별로 틀리지 않은 견해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경기도 교육감에게 직무이행명령을 내려 시국선언 참가 교사를 처벌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선거로 뽑힌 교육감을 정부가 이렇게 흔들어대도 되는지 모르겠다.

백승종/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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