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20 18:53
수정 : 2009.11.2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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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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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일대 변동이 있으면 지방행정제도도 바뀐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근 18년간 유배생활의 고초를 감내하며 방대한 저술을 남긴 전라도 강진만 해도 그 행정구역이 몇 차례 변했다. 고려 때까지 그곳에는 도강과 탐진이란 두 고을이 있었다. 그들이 하나로 통합된 것은 조선 태종 때였고, 강진이란 이름은 합병된 고을들의 이름을 조합한 것이다. 나중에 일제 치하가 되자 강진군 일부는 해남에 병합되었고, 그 대신 완도의 섬 하나가 강진 쪽으로 넘어왔다. 최근에는 해남군의 한 마을이 강진으로 이관되기도 했다. 지역 통폐합의 역사는 강진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발견된다.
그 점에 있어 고려 태조 23년(940)은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허다한 고을이 새로 들어섰고, 지명도 바뀌었다. 고을의 지위가 새로 정해졌고, 이웃 고을과의 상하 귀속 관계도 재조정된 경우가 많았다. 고려왕조의 지방통치제도가 기틀을 마련한 셈이지만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은 미약했다. 500개를 헤아린 고려의 고을들 중에서 지방관이 파견된 곳은 삼분의 일도 못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조선 태종 13년(1413)의 일이다. 전국의 고을 수는 330개 정도로 축소되었고, 고을마다 지방관이 부임하게 되어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치력은 한결 강화되었다. 조선말까지 유지된 이 제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이다. 개화 바람 속에서 새로운 모색이 있었지만 개화정책 자체가 지지부진해, 지방제도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지는 않았다. 격변은 일제 치하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근대화란 미명 아래 식민지의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지배를 극대화하기 위해 행정구역의 통폐합을 밀어붙였다.
현 정부는 새로운 광역경제권 편성을 추진중이다.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방안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지만, 역사적 필연성도 시민사회의 공감도 전혀 없다. 소모적인 논쟁만 유발하는 찻잔 속 태풍 꼴이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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