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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12 18:41 수정 : 2010.03.12 18:41

백승종 역사학자





바빌론의 함무라비법전에는 임부를 때려 낙태시킨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이 상세하다. 아시리아와 유대 지방에도 태아와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낙태행위 자체를 범죄시하지는 않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태아의 부모가 고령일 경우 낙태를 권장했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도 낙태가 유행했다. 2세기 소라누스는 낙태에 관해 글을 썼다. 낙태를 원하면 우선 뜀뛰기를 많이 하라고 주문했다. 무거운 물건 나르기와 장시간의 승마도 효험이 있다 했다. 그래도 안 되면, 쑥국화나 박하 잎을 복용하라고 처방했다. 다음 단계는 약초 물 목욕과 강제출혈이었고, 최종적인 수단은 좌약의 투입이었다. 하지만 임부에게 칼 따위의 흉기를 삽입하지는 말라 했다. 소라누스는 여성의 건강을 염려한 의사였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모계사회에서는 임부나 그 친족이 낙태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아이 아버지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부계사회에서는 물론 사정이 다르다. 중세에는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모두 산아제한을 허용했다. 당시에는 태아를 산모의 신체 일부이자 가장의 재산으로 여겼다. 낙태 문제를 깊이 고려한 것은 이슬람이었다. 그들은 낙태용 약물의 제조 및 복용방법은 물론, 부작용까지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16세기 말 교황 식스투스 5세는 낙태를 살인행위로 규정했다. 이로써 낙태를 둘러싼 끝없는 논쟁이 점화되었다. 그 결과 19세기부터 영국과 미국 등 서양 여러 나라는 낙태금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반발도 없지 않아, 20세기 전반 소련과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은 낙태의 권리를 보장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낙태 천국이었다. 정부는 인구 폭발을 걱정했고, 각 집안은 아들 낳기만 바라서였다. 그런데 이제는 고령화를 막겠다며 낙태 금지론이 강세다. 윤리도 국가이익도 다 좋지마는 출산은 여성이 한다. 누가 낳으라면 낳고, 말라면 말 일이 절대 아니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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