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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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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며 사법시험을 쳤다. 인권변호사로 노동자와 학생의 권리를 지키다 국회에 진출해 일약 ‘청문회 스타’로 이름을 떨쳤다.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아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고, 그 힘으로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해 일시 탄핵소추를 당하기도 했다. 보수언론과 반대파는 친북좌파라 매도했고, 진보 쪽은 그를 신자유주의 노선을 쫓는다며 공격해댔다. 거짓과 권위주의에 찌든 이 나라에서 소탈하고 솔직한 언행만 일삼아 스스로 왕따가 되었으니 그는 확실히 바보였다. 사나운 왕처럼 굴었더라면 떵떵거리며 평생 잘살 수 있었을 텐데 공연히 긁어 부스럼만 냈다. 사방에 신판 사대주의자들이 날뛰는 세상 풍조를 혐오하여 언감생심 미국과 대등하기를 꿈꾼 것도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삼척동자라도 강남 부자들 흑심을 다 아는데, 감히 종부세를 도입했고 행정수도 이전까지 거론했으니 스스로 묘혈을 판 셈이었다. 사정의 칼날 사정없이 휘둘러 반대파를 싹 쓸어내고, 광장 봉쇄하고 시민들 입을 단단히 꿰맨 뒤에 공포정치 하며 권불십년 하는 것은 정가의 오랜 전통이라. 그마저 외면하고 쓸데없이 민주만 외쳤으니, 그로 말하면 저질 협잡꾼 정상배 대열에도 끼지 못할 바보천치 아니었던가. 퇴임하기 무섭게 서울 버리고 초라한 고향마을로 돌아가, 논에 오리 풀어 유기농 벼농사에 착수했다. 하필 구제불능인 농촌을 살리려 덤비다니 그 또한 바보짓이었다. 옳으면 옳다, 그르면 그르다는 뜻 숨기지 못하고 제 몸으로 실천함은 바보됨의 본질이요, 제명 재촉하는 짓이라. 평범한 그 진리 못 깨치고 육십 평생을 허송세월하였으니. 화는 언제든 닥치고야 말 일 아니더냐. 제 바보짓 때문에 남까지 애먹이는 게 싫어 결국 부엉이바위에 올라 하늘로 날아갔다더라.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요,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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