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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23 21:35 수정 : 2010.07.23 21:35

백승종 역사학자

이것은 차별과 억압을 위해 존재한다. 그 기원은 17세기 영국에 있다. 1649년 찰스 1세가 사형되었는데, 그 아들 찰스 2세는 부왕의 심판에 관계한 58명의 인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그중 13명은 처형됐고, 25명은 종신형을 받았다. 피의 보복이 끔찍했다.

명칭은 달랐지만 블랙리스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로마 때는 집권자가 암살을 원하는 정적들의 명단이 있었다. 중국 송나라 때도 ‘당적’(黨籍)이란 것이 있었다. 가령 구법당의 사마광(司馬光) 등은 신법당이 재집권하자 당적에 기록되어 차별과 수모를 당했다. 조선 중종 때도 조광조 등 개혁파 선비를 망라한 기묘당적이 존재했다.

블랙리스트는 현대로 이어졌다. 20세기 초, 영국 기업가들은 노조원 명단을 만들어 놓고 채용을 거부했다. 히틀러의 부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정권 안보 차원에서 사회 각계 인사를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악명을 떨쳤다.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그 가운데 끼었다. 1940년대 미국에서도 공산당을 박멸한다며 각계각층을 들쑤셨다. 영화계도 그 바람에 휩쓸렸다. 월트 디즈니와 로널드 레이건이 앞장섰다는데, 결국 채플린 등이 의회모독죄로 기소되었다. “할리우드 10인”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돌턴 트럼보는 무려 10년 넘게 정식 취업을 못하고 가명으로 활동했다. 그래도 그의 펜 끝에서 <로마의 휴일> 같은 명화의 대본이 나왔다.

얼마 전까지도 후진사회에서는 블랙리스트가 맹위를 떨쳤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특히 악랄했다. 그간 온갖 블랙리스트가 횡행했던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악습이 여전한 것 같다. 최근 연예인 김미화씨가 ‘케이비에스(KBS) 블랙리스트’라는 것을 폭로했다. 이 때문에 그는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김제동씨 등도 이 명단에 들어 있다는 것 같다. <슬픈 리어왕>의 광대도 할 말 못할 말 다 했는데, 참 희한한 세상이다.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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