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03 18:40
수정 : 2010.09.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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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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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1984년>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했다. 과거란 곧 기억이다. 어떤 기억을 누가 결정하느냐에 따라 미래사회의 향방이 결정된다는 그 말이 정녕 맞다. 아니라면, 한-일 간에는 왜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지루한 공방전이 전개되겠는가. 홀로코스트나 동북공정이 문제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과 말 것을 누가 정하는가.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역시 오웰의 말인데, 빗나가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더라도 조선왕조라는 현실권력이 역사의 기록과 편찬을 통해 과거를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은 기억을 관리할 자격을 빼앗긴 채, 과거는 물론 그보다 더욱 소중한 미래마저도 잃는다. 그래서 기억을 둘러싼 인간사회의 분쟁은 끝없이 이어진다.
시민사회가 성장하면 기억에 관한 권리도 우리들 시민이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로서는 요원한 일이다. 정부나 관변단체가 그 권리를 독점한다. 광화문 같은 문화재의 복구가 됐든, 아니면 누구를 독립유공자로 선정하는 문제도, 전문 학자들이 결정한다고 말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아리송할 때가 많다.
<성서조선>은 1942년 3월호의 권두언 “조와”(吊蛙)가 조선민족의 소생을 꿈꾸었대서 강제 폐간되었다. 발행인 김교신과 함석헌, 이찬갑 선생 등 18명의 관련자들이 1년가량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웬만한 백과사전에서도 쉽게 확인되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특히 이찬갑 선생은 일제 말기에 신문스크랩북을 작성하고, 모서리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자신의 느낌과 주장을 적어놓았다. 지식인이 식민지 일상의 고통을 기록한 유일무이한 기록이지만 귀먹고 눈먼 관계당국은 꿈쩍 안 한다. 일제가 남긴 탄압의 기록이 없으면 표창도 보호도 못 한단다. 그렇다면 식민지 당국의 망령이 독립운동자도 뽑고 문화재도 결정하는 셈인가.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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