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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2 18:33 수정 : 2010.11.12 18:33

백승종 역사학자

“집밖을 나서면 모든 사람 상대하기를 큰손님 접대하듯 해야 한다.” 인(仁)이 무엇인지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그렇게 말했다. 손님 접대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이런 말이 다 나왔을까. 송나라 때의 필독서 <경행록>에는 “아무런 손님도 찾아오지 않는다면 집안 가풍이 천박해진다”고 했다. 학식과 인품을 겸비한 손님이 끊이지 말아야 가문의 격조가 높아질 것은 당연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손님 접대, 즉 접빈객을 중시했다. 한 집안의 평판이 접빈객 여하에 달려 있었고, 그래서 술 담그는 비법이 적힌 <수운잡방>을 비롯해 각종 조리서의 편찬이 잇따랐고 명문가 곳간 시렁에는 손님 접대용 밥상이 백 개도 넘었다. 하지만 접빈객의 요체는 따로 있었다. 궁핍한 선비가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그 시절에는 설사 내놓을 것이 나물 한 접시에 불과할망정 주인의 성심성의와 깍듯한 예의범절을 더 높이 쳐주었다.

그러나 물질만능의 세상에 살고 있어 그런가. 우리는 접빈객도 껍데기에만 집착한다. 엊그제 정부는 “지20 회의”를 개최한다고 한바탕 요란을 떨었다. 외국손님 눈살 찌푸리지 않게 음식물 쓰레기도 내버리지 말라고 했다. 쓰레기 배출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다면 하필 왜 남의 눈만 의식하는가. 서울 어디서는 택배조차 막았고, 외국 사람 만나면 겁먹지 말고 “헬로!” 하라고 가르친 것은 정말 가관이었다.

“백성에게 명령할 때는 큰 제사라도 받들듯 공손히 해야 한다.” 어짊에 대해 공자는 그렇게 말했다. 민주사회라는 이 나라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행사를 치르며 받들기는커녕 시민을 귀찮게 굴었다. 게다가 외국손님이라도 정치적 편견에 젖어 누구는 칙사 대접, 누구는 시위꾼 취급했고, 누구는 아예 공항에서 쫓아냈다. 따지고 보면 제일 큰 손님은 이 나라 시민들이다. 시민의 일상마저 담보로 잡아놓고 몇몇 부자나라 정상들 눈총받을까 봐 안달하다니, 이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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