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24 20:34
수정 : 2010.12.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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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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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가 누군가. 그는 일제 시기 한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한 지도자였다. 그 정직, 그 성실함은 재론의 여지조차 없다. 그런데도 해방이 되자 북쪽에서는 도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나중에는 상당수 남쪽 역사학자들까지 합세했다. 일제에 맞서 무력 투쟁을 벌이기는커녕 가망 없는 준비론만 외쳤다며, 그들은 도산에게 비현실적 이상주의자란 누명을 들씌웠다.
1932년 5월, <삼천리>에는 당대 최고의 문인 김동인과 이광수가 쓴 ‘안창호 회상기’가 실려 있다. 이 글에 나타난 도산은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단칸방에 세 들어 살 때도 툇마루에 여러 개의 화분을 기를 정도였다. 이런 도산이 어느 날은 상하이의 꽃집을 찾아갔다. 월계화 화분 하나가 마침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도산은 화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값을 물었다. 주인은 70전을 요구했다. 도산은 50전을 주겠다고 했다. 지루한 흥정이 시작되었다. 동행중인 도산의 동료는 그깟 화분 하나를 가지고 도산이 너무 심하게 군다고 여겨, “웬만하면 그냥 사시라”고 말참견을 했다. “우리가 쓰는 이 돈이 어떤 돈이오?” 도산은 요지부동이었다. 화분은 결국 도산이 제시한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후일담이지만 이미 도산은 상하이 곳곳의 화원을 돌아보며 가격을 조사했었다 한다.
쩨쩨한 사람이란 오해가 생길 만큼 도산은 알뜰했다. 동포들이 한푼 두푼 모금해 보낸 독립운동자금을 그는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썼다. 도산은 인정 넘치는 분이었지만 무슨 일에나 사전 준비가 철저했다. 부자나라가 돼서 그런가. 요즘 이 나라에서는 나랏돈이 흥청망청 허비되는 경우가 많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지만 연평도 바다 한구석에 값비싼 포탄을 터뜨려가며 평화의 싹을 짓밟은 이들, 멀쩡한 4대강에 천문학적 예산을 쓸어 넣기 바쁜 집권세력이여, 부끄러운 줄 알라. 만약 도산이었다면 이 돈으로 평화통일을 크게 앞당길 수 있었으리라.
백승종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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