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2.18 18:46
수정 : 2011.02.1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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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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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운동은 1980년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유럽의 도시는 장기 불황과 실업, 이민 증가로 골머리를 앓았다. 침체의 늪에 빠진 도시경제를 되살리려고 온갖 꾀를 짜내는 가운데 문화도시 만들기라는 사상 초유의 발상이 움텄다. 문화가 산업을 대체할 수 있다! 이것은 사고의 일대 전환이었고, 산업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로의 비약이었다. 문화도시란 미명 아래 문화제국주의가 살며시 다가왔다. 겉보기에는 폐허로 변한 산업도시 한복판에 문화 예술시설을 조성하는 도심 재개발 사업 같았지만, 그 속셈이 음흉했다. 역사상 소비재로만 인식되어온 문화를 돈벌이 수단으로 바꾸고 말았다. 이른바 그 문화투자가 성공하자 유럽의 문화도시에는 돈바람이 불었다. 예술과 문화가 춤을 추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초대형 쇼와 전람회, 스포츠 대회가 잇따라 개최되자 도시의 금고에는 황금이 넘쳐났다. 영국의 글래스고는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럼 이제 서울과 부산 등지에 세계 정상급의 문화시설 몇 개만 조성하면, 저절로 문화제국주의의 대표주자가 될 수 있을까. 턱도 없는 말이다. 유럽의 야만적인 문화제국주의에도 실은 부러운 구석이 많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시민의 보편적인 복지혜택이 보장되어 있다. 먹고살 걱정이 별로 없는 그들이기에 마음 편히 교양을 갈고닦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고급문화를 소비하는 동시에 이를 창조하는 “프로슈머”로 기능한다. 문화제국주의의 숨은 비결은 시설물과 같은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에도 있다.
요즘 한국의 도시들은 문화도시를 못 만들까 봐 안달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도시는 비참하기 짝이 없다. 복지는 고사하고 전셋집도 못 구해 아우성치는 시민들이 너무나 많다. 교양이나 문화 따위는 어깨 처진 우리들 시민이나 입시지옥에 갇힌 아이들로서는 돌아볼 여지가 없다. 문화도시 운동 같은 것은 부자들만 위한, 정말 딴 나라 이야기다. 역사학자·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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