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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5 19:43 수정 : 2011.02.25 19:43

백승종

역사에는 꽃다운 이름의 혁명이 있다. 1974년 포르투갈의 좌파 청년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시민들은 혁명군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꽂아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우파 살라자르 독재정권이 봄 안개처럼 사라졌다. 명예로운 이 무혈혁명을 우리는 카네이션 혁명이라 부른다.

2003년 조지아(그루지야)에서도 무혈혁명이 일어났다. 부패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퇴출 대상이었다. 본래의 그는 유능한 정치가였다. 소련의 마지막 외무장관으로서, 그는 미하엘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을 온 세상에 알렸고, 그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심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생국 조지아의 대통령 노릇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셰바르드나제를 권좌에서 몰아낸 조지아 시민들은 장미 혁명을 외치며 환호했다.

지난 연말연시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민주화 물결이 거셌다. 만성적 인플레이션과 벤 알리의 철권통치에 실망한 민심이 요동치자, 24년 만에 정치적 물갈이가 성사되었다. 그 파도가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전역을 강타중이다. 산유국 리비아가 지금 폭풍의 한가운데 있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유혈사태까지 불사하며, 끝내 역사의 물결을 막아선다. 서방 매체는 튀니지발 정권교체를 재스민 혁명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칭호다. 재스민 혁명이란 문제의 벤 알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하비브 부르기바를 쫓아내고,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려고 꾸민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튀니지 시민들은 자신들의 민주화 운동을 온라인 혁명, 또는 페이스북 혁명이라 일컫는다. 이번 혁명의 일등공신은 인터넷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엇나간 재스민 혁명은 그 앞길이 첩첩산중이다. 남의 일이라며 간단히 웃어넘길 일은 결코 아니다. 혁명의 이름 뒤에 들어서는 정부는 “고장난 민주주의”체제이기 쉽다. 한국은 그런 일 겪고 또 겪었지만, 아직도 인권이 곤두박질치는 남루한 이 현실은 도대체 무엇인가.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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