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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22 19:42 수정 : 2011.05.28 11:01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늙은 독재자의 질긴 수명처럼 압제와 부패는 언제까지나 이어질 듯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청년 학생들의 성난 함성은 이승만 정권을 역사의 저편으로 쓸어가버렸다. 서구에서 아직 68혁명이 일어나기도 전이었으니, 그들의 영향으로 된 혁명은 아니었다. 제3세계 이곳저곳에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신악이 구악을 대신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4·19 학생혁명은 세계를 놀라게 한 기적 같은 쾌거였다.

우리가 잊고 지내서 그렇지, 청년 지식인들이 신념을 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진 것은 이 나라의 오랜 전통이었다. 조선 500년 동안 그들이 연좌농성 또는 연명 상소로 조정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죄를 입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성균관에서 내침을 당하고,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매를 맞고 귀양 간 선비의 사적은 조선의 역사를 수놓았다.

4·19는 젊은 학생들이 절개 있는 선비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그 빛은 쉬 꺼지지 않았다. 대학에서 쫓겨나고 모진 고문 끝에 설사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이 땅의 대학생들은 민주화의 깃발을 내리지 않았다. 그 운동의 저변에는 동학농민운동 같은 민중적 전통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끈질긴 투쟁 끝에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만 우리 젊은 지식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분연히 일어나던 유생들의 푸른 옷깃을 본다.

이제는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미국발 신자유주의 물결이 지구를 삼켜버린 지금, 글로벌 인재를 기른다는 미명 아래 시퍼렇던 대학은 취업준비학원으로 전락했다. 청년 지식인들은 더 이상 선비가 아니다. 이웃나라에서 원자력발전소 재앙이 일어나도, 정든 친구가 극심한 경쟁주의에 밀려 목숨을 끊어도 그들은 미동조차 안 한다. 각자도생의 비참한 현실에 압도된 때문일까. 이상을 상실한 취업준비생만 양산하는 우리 대학, 우리 사회. 역사의 한 시절을 곱게 물들이던 젊은 그 꽃잎이 모진 세월 속에 시들어 간다.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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