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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8 19:18 수정 : 2011.07.08 19:18

올해 7월부터 독일은 모병제로 전환했다. 늘 지구 한 모퉁이에서 누군가와 툭탁거리는 미국도 모병제를 택한 지 오래다. 20세기 말부터 많은 나라들이 앞다퉈 징병제를 포기했고, 이제 그 도도한 물결은 세계사의 대세가 되었다. 아직도 징병제를 고집한다면 어딘가 시대착오적인 구석이 있는 나라가 분명하다.

먼 옛날 바빌론의 함무라비왕은 장정들을 징발해 평시에는 노역에, 전시에는 군인으로 동원했다. 징병의 대가로 약간의 토지를 지급하였다니 착취만은 아니었던가. 조금 더 발달한 것이 중국의 부병제(府兵制)였다. 수와 당은 징집된 장정들에게 100묘씩 토지를 나눠주고, 각종 세금도 면제하였단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지만 백성들에게 딱히 무슨 혜택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조선 후기에는 아랫사람들에게만 부과되는 성가신 부담이 군역이었다. 군포를 둘러싸고 온갖 부정이 만연해 나라 꼴이 엉망이었다.

서양에서는 봉건제가 무너지자 일시 모병제가 유행했으나,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그것도 끝장났다. 19세기 서구 열강은 제국주의 노선을 추구했던 관계로 군비경쟁에 혈안이 되었다. 다들 부국강병의 필수요건은 징병제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칼로 일어서면 칼로 망한다. 전쟁을 일삼던 영국과 프랑스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느라 힘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때아닌 냉전 바람에 징병제는 잔명을 유지했다.

냉전의 와중에도 독일(서독)은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징집을 면제했다. 독일 청년들의 군복무 기간은 길어야 18개월이었고, 그나마 1980년대부터는 양심상의 이유로 대체복무를 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오히려 통일을 이뤄냈다. 우리 한반도의 사정은 판이했다. 몸집만 비대해진 군대는 쿠데타로 권력을 쥐고 온 나라를 병영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시민들을 을러댔지만 통일은커녕 자주국방도 못한다. 잦은 구타와 가혹행위로 자살과 총기사고가 빈발하는 우리 군대, 이놈의 징병제를 어찌할꼬.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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