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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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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한국에도 자국어의 가치에 주목한 세종이 있었다. 그는 한글 창제를 주도했다. 한글은 세계역사상 가장 늦게 등장한 표기방식이었지만, 그 수준 역시 세계 최고였다. 세종은 갓 태어난 한글로 왕실홍보 문헌 <용비어천가>를 짓게 하였다. 불심을 북돋우는 <석보상절>도 한글로 쓰게 했고, 중국 고전시의 대가 두보의 한시도 한글로 옮기라고 했다. 왕에게는 루터와 셰익스피어에 못지않은 문화적 열망이 있었다.
세종의 꿈은 후대로 이어졌다. 왕의 아들 세조는 <능엄경> 등을 한글로 번역하게 했다. 16세기에는 국책사업으로 한문 유교경전도 번역했다. 그리하여 보석 같은 한국의 고유 어휘가 많이 살아남았다. 한글 표준화도 상당히 진척되었다. 점차 한글로 된 시가와 소설까지 등장했다. 자국어 문화의 발전 추세가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일이 망가진 것은 18세기부터였다. 국가의 한글 번역사업은 막을 내렸다. 한국 고유어를 지키려는 노력도 약해졌다. 한글소설과 판소리는 한자어투성이였다. 서사무가조차 그러했다. 구한말에 등장한 국한문 혼용체란 순한문에 겨우 한글로 토만 붙인 것이다. 이처럼 한문의 싹쓸이가 갈수록 심했다. 19세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고유 문체를 지키려고 프랑스식 문체의 유행을 비판했다. 그에게 문체는 곧 국민정신의 표징이었다. 대통령이 뼛속까지 친미라는 이 나라 대학에서는 제 나라 역사까지도 영어로 가르쳐야 좋은 줄 안다. 차라리 한글을 없애자!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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