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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14 19:17 수정 : 2011.11.14 19:17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상왕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1418년 병조참판 강상인은 태종 앞에 끌려가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군국의 기무를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상왕은 아들의 국구(國舅)를 노렸다. “심온이 불순한 언동을 했습니다.” 강상인의 입가에서 이 말이 나올 때까지 매질은 계속되었다. 전형적인 표적수사였다.

상왕은 아들의 장인이 장차 권세를 농단할까봐 근심했다고 한다. 외척을 시기하던 좌의정 박은도 상왕의 편이었다. 그들은 심온을 숙청하려고 별렀지만 뾰족한 구실을 찾지 못해 안달했다. 그들의 음모를 눈치챈 병조좌랑 안헌오가 합창을 불렀다. “명령이 두 곳(상왕과 세종)에서 나오고 있다. 한 곳(세종)에서 나오는 것만 못하지 않은가? 강상인이 그런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는 평소 심온과 매우 가까운 사람이옵니다.” 안헌오의 이런 고자질이 피바람을 불렀다.

1408년 심온은 충녕군의 장인이 되었다. 그 사위가 왕위에 오르자 영의정이 되어 명나라에 사은사로 길을 떠났다. 강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는 부재중이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영문도 모르는 채 귀국을 서두르던 심온은 의주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어느 정치학자는 태종이 국가를 위해 외척을 제거했다며 상왕을 편들지만, 어불성설이다. 세종은 이 사건을 무고로 단정하고 심온의 관작을 복구하였다.

표적수사는 깜깜하던 시절의 나쁜 유산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가. 노무현 대통령까지도 이런 악습에 희생되고 말았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수사도 결국 표적수사가 아니었냐는 논란이 없지 않다. 현 정권은 여차하면 정치검찰을 앞세워 표적수사를 벌인다는 비난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피디수첩>은 물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도 그 칼끝에 쓰러졌다고들 수군거린다. 서울시장 박원순씨도 위험하다는 보도가 있다. 도대체 검찰은 언제까지 이런 광대놀음을 할 것인가.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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