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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30 19:41 수정 : 2012.04.30 19:41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거짓말 못하는 사람은 무엇이 진실인지 모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했다. 그처럼 진실과 언어의 문제를 숙고한 이는 드물었다. 언어란 애매모호한 것이라서 진실의 토대가 되기에 부적합하다. 니체의 생각은 그러했다. 하지만 언어를 떠나 인간의 진실이 표현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언어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속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관행으로 굳어진 이런 사실을 직시하라. 니체는 낡고 무력한 언어의 감옥에서 인간이 해방되기를 갈망하였다.

거짓의 문제에 극도로 민감한 이가 또 있었다. 공자였다.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 하늘을 속이는 행위라고 확신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몰라도 나 자신이 이미 그것의 거짓됨을 알고 있다면, 이보다 추악한 거짓이 없다. 공자는 그렇게 가르쳤다. 바로 여기서 신독(愼獨)의 개념이 나왔다. 그 토대 위에 조광조는 명덕(明德)의 이상 정치를 펴고 싶었다. 요컨대 유가(儒家)의 모든 학설은 진실성(誠)을 근간으로 삼았다. 나중에 조선의 성리학 사회가 잘못된 것은 권력자들이 거짓을 일삼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법 없이도 살” 선량한 사람들이 많았던 덕택에 아주 망하지는 않았던가.

요즘 권력자들도 꼬락서니가 한심하다. 미국에서 광우병만 발생하면 통상마찰을 감수하고 수입 중단을 단행하겠다던 2008년의 굳은 약속. 그 약속은 어디로 갔나. 이미 수입중단을 천명한 나라들도 있건만 제 나라 백성 속이는 짓은 예사요, 재벌과 강대국의 호통만 두려워 벌벌 떠는 작태다. 무고한 시민들만 결국 덤터기를 쓴다.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녹아내려도 핵발전은 안전하다며 거짓말을 일삼았다. 선거 때는 비정규직 문제를 제 일처럼 떠벌리더니 그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도대체 쌍용차 사태의 끝은 언제란 말이냐. 공자와 니체의 통찰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거짓말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라도 됐으면 싶다.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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