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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07 19:40 수정 : 2012.05.07 19:40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그것은 전기도 아니고 정강이나 정책도 아니었다. 독일 나치의 경전 <나의 투쟁>(Mein Kampf)은 백일몽이었다.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불한당들과 함께 뮌헨의 이름난 맥줏집을 습격하였다. 어설픈 쿠데타가 불발로 끝나자 히틀러는 란츠베르크 감옥에 갇혔다. 옥중에서 그는 위험천만한 망상을 기록해 두 권짜리 책을 펴냈다. ‘더러운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을 박멸하자. 그리하여 순수 아리안 혈통을 대표하는 게르만족이 지배하는 천년왕국을 세우자.’

히틀러 치하에서 문제의 책은 1000만부도 넘게 발행되었다. 독재자의 백일몽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 유럽을 생지옥에 빠뜨렸다. 히틀러가 쓰러지자 바이에른 주정부는 <나의 투쟁>의 저작권을 확보했다. 독일에서 다시는 그 책이 간행되지 못하게 막으려는 조처였다. 출판금지를 위해 저작권을 독점한 이 역설. 3년 뒤면 그 저작권이 만료된다. 하지만 독일 시민들은 나치 부활의 염려를 놓을 수 없다. 독일인들은 역사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2007년부터 뮌헨의 ‘현대사연구소’가 대안을 강구하였다. 그들은 5년에 걸쳐 ‘나의 투쟁’에 관한 엄정한 주석서를 편찬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무나 ‘나의 투쟁’을 인쇄에 부쳐”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그날이 오기 전에” 일을 마칠 거란다. 세상을 재앙에 빠뜨린 히틀러의 과대망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역사가들의 책무가 되었다.

한국에도 꼼꼼한 주석을 달아 맹독성을 계몽해야 할 책들이 있다. 박정희의 저작들이 문제다. 1963년 9월 그는 과대망상으로 가득한 <국가와 혁명과 나>를 출간했다. 민정이양의 약속을 저버린 야심가는 장구한 한국 역사를 “피곤한 오천년”이라 매도하였다. 건국 이래 시민들이 추구한 민주주의 역시 “절름발이의 왜곡된 민주주의”로 폄하하였다. 그는 전국민을 상대로 감히 “인간개조”를 별렀다. 한 권의 냉철한 주석서가 박정희기념관 백 개보다 낫다.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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