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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7 19:32 수정 : 2009.06.18 13:00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외국에 나갔던 이들이 들고 온 기념 볼펜은 언제나 그저 그런 선물이었다. 한데 어느 날 ‘라미’ 볼펜만 고집하는 이에게 볼펜 선물을 받고는 마음이 확 당겼다. 그러고 보니 볼펜도 디자인이고 패션이고 취향이다. 구준표가 모나미 볼펜 끼고 있는 거? 안 어울린다. 필요할 때 찾으면 꼭 없는 것 중 하나도 볼펜이다. 이사 갈 때 소파 있던 자리에서 세 개 이상은 나온다. 문제는 가격이 저렴해서, 볼펜의 행방불명에도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요새 볼펜 값은 금값, 몸에 금덩어리를 달고 있는 볼펜도 많다. 지난해 스위스에선 1200여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9억원짜리 볼펜도 출현했다.

몸값 저렴한 볼펜으로 치자면 우리나라엔 ‘모나미’, 세계적으로는 ‘빅’(Bic)이 있다. 1938년 헝가리 신문기자 라슬로 비로(Laszlo Biro)가 발명한 빅 볼펜은 지금도 초당 57개씩 팔려나가는 초인기 상품이다. 잉크 묻는 만년필이 불편했던 신문기자, 화학자인 동생의 도움으로 금속제 볼 베어링을 몸 끝에 붙인 빅을 착안했다. 비 오는 날 아이들이 구슬을 던지면 땅에 흔적이 남는 데서 잉크 넣은 볼펜 내부를 디자인했다니! 이 기자 관찰력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신문기자답게 성격도 급했는지 미적인 장식? 이런 것보다는 전투적으로 글을 잘 뱉어낼 수 있는 쭉 빠진 다각형 구조를 세웠다. 상의 주머니에 끼울 수 있는 작은 뚜껑도 챙겼다.

기자가 만든 빅(Bic)볼펜 VS 화려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비스콘티’ 볼펜

빅 볼펜은 3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 선을 유지했다. 단순한 디자인으로 세계 어디서나 민심을 얻었다. 볼펜심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이도록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외부를 디자인한 공이 컸다. 중요한 사인을 남겨야 할 때 볼펜심이 닳아 안 나오는 실수를 할 리가 없어서였다. 들고 다니기도 쉬워, 2차대전 때 공군들도 애용했다.

최근 볼펜 디자인은 볼펜의 기능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비스콘티’ 볼펜은 강렬하고 매혹적인 색채와 문양이 트레이드마크. 영화 제작 때 쓰이는 투명필름인 셀룰로이드를 재료로 삼아, 펜 표면에 아르누보 스타일의 디자인으로 멋을 낸다. 2002년 나토-러시아 회담의 공식 만년필로 이 필기구가 지정됐던 예는 볼펜의 권력이 멋에서 나온다는 걸 보여준다. 상아, 에보나이트, 아크릴, 금, 다이아몬드로 외부를 치장해대니 문구류라기보다 보석류에 가깝다.

셀룰로이드는 색채 표현이 용이해서 비스콘티 디자이너들은 볼펜 위에 그림을 그린다. 반 고흐의 작품 배경에서 착안한 ‘반고흐’ 시리즈, 뉴욕 맨해튼 밤거리에 영감 받아 물결무늬로 밤거리를 형상화한 ‘뉴욕 월스트리트’ 라인도 인기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토크쇼에 나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펜”이라며 비스콘티의 ‘타지마할’을 소개한 일화는 유명하다. 비스콘티가 얼마나 화려하고 비싼 놈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빅 100개와 비스콘티 1개를 준다면 당신은 무엇으로 쓸 건가?

현시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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