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01 21:18
수정 : 2009.07.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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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레아르가 디자인한 최초의 비키니 VS ‘비비드 비치’의 비키니 ‘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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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비키니의 첫 등장은 세계적인 스캔들이었다. 굵은 뿔테 안경의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르가 1946년 독특한 수영복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등과 배는 훤히 드러나고 손바닥만한 천이 최소한의 가릴 곳만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면의 작은 삼각형, 엉덩이의 큰 삼각형, 가슴의 삼각형 콤비만이 루이 레아르의 도안에 그려져 있었다. 과감하게 버리고, 단순하게 남기는 디자인의 경제성이 몸의 섹시함을 덩어리째 드러냈다. 20세기 초 스포츠 의상으로 개발된 털실 원피스 수영복이 브래지어와 팬티로 대변되는 속옷의 영역과 접합되는 순간이었다. 당시엔 육체파 섹시 미녀 스타들도 이 과감한 천조각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이탈리아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비키니 금지령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발사한 남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섬에서 이름을 딴 비키니는 1960년대를 지나며 자유와 섹시미의 상징이 됐다. 당시 ‘아주 작고 노란 물방울 무늬 수영복’이란 팝송은 “그녀는 겁이 나서 탈의실에서 나오질 못했지요/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노란 물방울 무늬가 새겨진 비키니를 입었죠”라며 비키니를 향한 대중의 심정을 노래했다. 극동의 대한민국에서도 1961년 백화사가 상어표 수영복이란 브랜드로 최초의 비키니를 제작했다. 노출증 환자라는 의심을 샀던 한 디자이너의 파격이 전세계인들에게 풀장에서 맘 놓고 벗을 권리를 선사한 격이었다.
그 후, 비키니 디자인은 더 작아졌고 앙큼해졌다. 관음증, 여성 해방, 일탈이라는 평가와 함께 변형 비키니들도 등장했다. 극단적인 예로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은 지난해 패션쇼에서 ‘맨키니’라는 이름의 남성용 비키니를 선보였다. 목에서 골반까지 와이(Y) 자 모양의 긴 선이 하의와 연결되는 형태. 검은색과 회색의 모던한 색감을 택해, 우스꽝스럽기는커녕 세련된 인상을 줘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런가 하면 국내 수영복 디자이너 브랜드 ‘비비드 비치’가 디자인한 비키니는 첫눈에 ‘이게 비키니야?’라는 호기심을 일으킨다. 야해 보이지도 않고, 속옷 같지도 않다. 비비드 비치의 ‘테나’라는 이름의 비키니는 나일론 스판의 딱 붙는 핫핑크 바지에 상의에는 지퍼와 후드까지 달려 있다. 흥미로운 건 테나는 디자이너 엄진민이 기억하는 친구의 이름이란 사실. 캘리포니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엄 디자이너는 수상스포츠를 유독 좋아했던 테나를 위한 비키니 디자인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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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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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드 비치’의 비키니에는 각각 다른 신체적 특징과 성격을 가진 친구들의 기억이 스며 있다. 섹시해야 한다,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대신 해변가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스포티한 디자인에 비키니의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이 덧붙어 있다. 비키니 같지 않은 비키니라 더 입어보고 싶고,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색감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고등학교 시절 “너네를 위한 수영복을 만들어줄게”라고 말했던 스물다섯 살의 젊은 디자이너에게 비키니는 스캔들이 아니라 우정이 담긴 옷이다. 친구의 이름을 딴 비키니라면 탈의실에서 겁낼 필요는 없겠지!
현시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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