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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16 19:01 수정 : 2009.09.16 19:01

이게 진짜 명품 가방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그의 가방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타인의 손에 들린 가방은 적잖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가방 속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로고 말고는 볼 게 없는 명품 가방부터 구멍 숭숭 뚫린 빨간 시장 가방, 목욕 바구니까지 가방은 주인의 취향뿐 아니라 그의 이동 경로를 예상하게 한다.

이에 비하면 이른바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살굿빛 이동 손수레(카트)는 직설적이기 그지없다. 불투명한 플라스틱 외관은 투명할 정도로 속이 들여다보이는, 정직한 디자인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부에는 뒷부분으로 빨아 먹으면 더 맛있는 야쿠르트와 빨대, 몇 가지 유제품이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야쿠르트 색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입맛을 다시게 하는 독특한 색상과 카트 옆면의 ‘㈜한국야쿠르트’ 로고는 이젠 익숙해진 트레이드마크다. 노란색 상의를 입은 배달원들의 소유라는 인식이 워낙 굳어져 대로변에 카트가 세워져 있다 해도 감히 훔쳐갈 생각을 누구도 쉽게 못할 것 같다.

지난해 400억병 판매를 돌파한 야쿠르트는 전 국민이 한 번쯤은 먹어봤을 대한민국 대표 음료수다. 판매원만 해도 1971년 47명으로 시작해 90년대 말 이미 1만명이 넘었으니 야쿠르트 수레가 내겐 어린 시절부터 봤던 동네 풍경의 일부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이런 야쿠르트 카트도 2007년 ‘모던한 디자인’을 표방하며 새롭게 변태했다. ‘친근함, 자신감, 신선함’이라는 이미지 전략에 따라 부피를 줄였고 전동모터가 달린 카트도 일부 개발돼 높은 언덕에서의 배달이 한층 용이해졌다. “새 가방이 음료수의 냉기를 더 오래 보존해준다”는 한 배달원의 말처럼 야쿠르트 카트는 냉장장치를 보유하고 있어 음료수가 식을까 도로를 질주하듯 빨리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점 때문에 2007년 한국산업디자인상에서 ‘여성 사용자를 배려한 디자인상’을 받았다.

야쿠르트 가방처럼 먹을거리를 담고 이동하는 거리의 낯익은 가방으로는 중국집 철가방을 빼놓을 수 없다. 밝은빛 알루미늄 금속성의 이 흔하디흔한 철가방은 2008년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꼽은 ‘대한민국 대표 디자인’에 선정될 정도로 몸값이 높아졌다. 철가방의 주인은 야쿠르트 기업이 친절함을 표방하며 전략적으로 내세운 여성의 반대편에 선다. 철가방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빠르게 운전할 줄 아는, 언뜻 보면 동네의 무법자 같은 청년들의 손에 들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그들 손에 들고 있는 네모반듯한 철가방을 보는 순간 자장면과 볶음밥이 주는 친근함을 떠올리며 이내 긴장을 푼다.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중국집 ‘상해’의 배달부 추아무개 씨도 “가볍다. 음식이 안 쏟아진다. 미술을 공부했는데 키치적인 디자인이 맘에 든다”고 평했다. 실제로 철가방은 나무가방, 플라스틱 가방을 거쳐 그 효험을 인정받아 정착한 케이스다. 위로 밀어서 여는 슬라이딩 구조나 책꽂이처럼 3~5개 칸으로 나뉘어 있는 내부는 그릇을 쌓아 올리기에 적절한 알뜰하고 효율적인 형태다. 살굿빛 카트와 철가방은 거리에 널려 있다는 점에서 비밀스러운 매력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이 둘은 한 번 보면 또 보고 싶은, 대중의 입맛을 얻어내는 ‘미인’ 같은 디자인이다.

객원기자·사진제공 한국디자인문화재단, 한국야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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