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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메일 vs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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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거리의 우체통은 혼자 서 있다. 2009년 가을 동네 우체통은 애틋하긴 하지만 안아주기엔 몸통이 큰 이방인 같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싶어도 할 일이 마땅찮은 오래된 붙박이장 같다. 10월9일 세계우편의 날을 맞아 모처럼 거리의 우체통을 바라본 나는 5년 넘게 이 사물을 만져보거나 이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레는 마음에 우체통 속으로 편지를 쏙 넣었던 과거와 비교해 지금의 나는 우체통 처지에서 보면 변절한 애인이다. 하지만 결코 얼굴을 잊어버릴 수 없는 옛 애인이다. 어디에나 있으니 자주 우체통 앞을 스쳐 지나갔을 확률이 높다. 그만큼 눈에 익숙한 사물이지만 공공용품이자 공공디자인이기 때문에, 어딘가 딱딱해 보인다. 갖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형태도 아니고 다루기 쉬워 보이지만 우체통은 까다롭다. 가제트 팔처럼 특수 로봇 신체가 아닌 이상 편지를 누구도 함부로 꺼낼 수 없다. 오직 우체부 아저씨만이 이 우체통을 열 수 있으니 알고 보면 비밀스러운 디자인이다. 색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붉은색을 몸 전면에 칠하고 있음에도 우체통은 매혹과는 거리가 멀다. ‘우편’이라는 글자와 비둘기 모양 기호가 새겨 있고 빠른우편인지 보통우편인지에 따라 두 개의 구멍이 나 있는 게 다다. 지금 디자인은 언제 생겨난 걸까? 1884년 구한말의 우체통은 목재를 썼는데 구멍 뚫린 나무통이었다. 1957년부터 82년까지는 윗부분만 붉은색이었고 아랫부분은 녹색이었다. 82년부터 사용된 지금 우체통에 견줘 더 화려한 모양새였다. 30년 남짓 유지되고 있는 지금의 기본 형태에 대해 우정사업본부는 우체통은 여전히 “친근하다, 정겹다”고 말했다. 빨간색이 어디 다정하기만 할까. 러시아의 푸른색 우체통, 스위스의 노란색 우체통과 달리 빨간색 우체통은 “신속하게 급한 일을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구급차와 소방서가 붉은색으로 외관을 포장하듯 빨간색 우체통은 자기 몸을 빌려, ‘이 안의 편지들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편지는 우체통 속이 아니라 ‘내 메일함’에 존재한다. 거리의 풍경이 되는 우체통과 달리 전자우편함은 사적 영역이다. 새 편지는 미색 편지봉투 모양의 앙증맞은 아이콘과 함께 내게 온다. 땅에 정박해 있는 우체통과 비교해 전자우편의 신호체계와 보관함은 온라인이라는 허공에 붕 떠 있다. 지난 6월 전자우편함을 개편한 네이버의 디자인 방향은 ‘쉽다’는 가치를 강조한다. 분할모드 기능을 이용해 메일 목록과 내용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나 꼭 기억해야 할 메일을 중요메일(★) 표시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개인이 ‘쉽게’ 메일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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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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