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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8 20:46 수정 : 2009.11.12 14:36

(사진 왼쪽부터) 육군 군모, 나치 친위대(SS)의 군모, 선캡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돌날 아기들이 쓰는 남바위와 졸업식 때 쓰는 솔 달린 사각모는 유별나다. 치장이 유별나고 세련돼서가 아니라 한눈에 봐도 그날이 모자를 쓴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렇게 유별난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살아간다. 좀 우스꽝스러워 보이긴 해도 생일을 위한 장난스런 고깔모자와 요리사의 허공으로 치솟은 모자는 볼수록 정겹다. 이태원 언덕에서 볼 수 있는 무슬림들의 흰색 납작한 모자와 천안문 광장에서 파는, 별이 찍힌 모자는 계속 봐도 이국적이다.

국방색이나 짙은 회색 등 파스텔 톤의 각 잡힌 군모들은 세계에서 일어났던 각종 힘의 투쟁과 온갖 혁명, 전쟁에 동원되었다. 개인이 아닌 집단에 쓰게 했을 때 손쉽게 집단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의무를 각인시키는 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모자도 더디게나마 디자인이 변화한다. 현재 육군이 쓰고 있는 녹색 얼룩무늬 모자는 1996년부터 쓰인 것으로, 앞에 계급장이 붙어 있을 뿐 디자인의 기교는 없다. 통상 카키색이라고 하나 육군은 녹색이라고 부른다. 다만 51호부터 62호까지 치수만은 다양하다. 2006년 베레모 형태로 육군 전투모를 바꾸자는 시행안이 나왔지만 ‘얼굴 껍질 벗겨진다. 미군부대 모자 같다’는 등 다양한 반대에 부닥쳐 베레모 안은 실행되지 않았다.

힘을 과시하는 군모 중에서도 나치 친위대(SS)의 군모는 공포영화 떠올리게 할 만큼 노골적으로 모자의 모서리 곳곳마다 급한 각을 잡아 겁을 줬다. 나치 친위대 군모는 번개 모양의 배지를 단 유니폼보다 한술 더 뜬 셈이다. 해골 문양의 배지가 떡하니 모자 중심에 올라와 앉아 있으니 말이다. 천으로 수를 놓은 것이 아니라 은색의 빛나는 배지라는 점에서 해골은 체계 구축에 눈먼 나치의 집단광기를 확인하게 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부대가 단체로 하고 있는 장면은 꿈에 나올까 무서운 디자인이다.

이러한 힘을 비웃으며 더 큰 힘을 과시하는 건 역시 선캡이다. 세계 각국의 군모처럼 힘을 과시하는 대신 선캡은 실용성을 발휘하며,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사랑을 받는다. 계급과 신분을 알려주는 군모와 달리 선캡은 푹 눌러쓸 경우 얼굴을 볼 수도 없고, 흰 마스크까지 쓸 경우 완벽하게 얼굴이 완벽히 가려진다. 선캡은 힘과 멋을 보여주진 않지만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한 실용성에 있어서만은 가장 강력한 효과를 준다. 창이 가장 넓은 축에 속하고 짙은 색 플라스틱 재질로 완벽하게 얼굴 타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의 운동과 자유를 위한 모자인 선캡은 행사 판촉물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급할 경우 신문이나 종이를 이용해서 직접 만들 수도 있다.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그렇다고 선캡이 힘이나 멋 따위와 상관없는 딴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코오롱스포츠에서 올봄 출시한 신제품은 선캡에 그럴싸한 무늬도 새겼고, 이마와 닿는 띠 부분을 땀 흡수가 빠른 쿨맥스 소재로 활용하는 등 선캡 디자인도 꾸준히 진화한다. 또한 파워워킹 중인 선캡을 쓴 여인과 길가에서 부딪히기라도 하면 팔이 엄청 아플 만큼 아줌마들의 힘은 세다. 누구도 쉽게 선캡 모자를 쓴 아줌마의 이동 경로를 방해할 수는 없다. 군모처럼 대놓고 힘과 권력을 보여주지 않으나 더욱 무시할 수 없는 개인의 모자인 것이다.

현시원 객원기자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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