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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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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같이 살다 보면 미움도 커진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 중 거의 대부분이 부부나 동거하는 애인 등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진다. 영화 <대부>에서 말런 브랜도는 알 파치노에게 ‘친구를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고 충고했지만, 적이라서 가깝게 지낸다기보다는 가깝게 지내다 보면 적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같이 사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대학시절 친구와 함께 지방 고시원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저 집을 떠나서 함께 지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생각에서 의기투합한 것이다. 시작은 좋았다. 함께 책도 읽고 이런저런 주제를 놓고 떠들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심심할 때면 읍내에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하고, 집에 가고 싶을 때는 함께 벽을 긁으며 놀았다. 식사 때마다 밥솥의 거의 절반을 해치우고 눈총을 받는 나를 위해 변명을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볼 때면 마치 신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흐뭇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금실(?)이 좋던 녀석과 사이가 벌어진 것은 정말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함께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이 녀석이 손을 씻지도 않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어떤 컵으로 커피를 마셨는지 깨달은 나는 그 후 친구가 화장실을 갔다 올 때마다 손을 씻었는지 신경을 쓰며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아주 가끔, 몹시 심하게 추운 날 양치질을 생략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나를 야만인 취급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보면 똑같이 지저분했을 우리 둘은 이런 사소한 문제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갈라서게 되었다. 수년간의 학창시절을 무사히 견뎌낸 우정이 동거 두 달 만에 무참하게 깨진 것이다. 한 번 금이 간 사이가 다시 회복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같이 사는 사람과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지내야 할까. 별것 아닌 일로 우정의 굴곡을 겪은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서로 상대의 결점이 보이기 시작할 때 이미 관계는 하강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같이 사는 사이에서도 관계의 신선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금 말런 브랜도의 말을 빌린다면 상대방에게 새롭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계속 하자는 것이다. 함께 살다가 우정에 금갈 뻔했던 친구는 그 후 영화 제작에 손을 대서 우리 영화 역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작품을 만들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 친구와 다시 동거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엔 손을 씻으라고 잔소리하기보다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보고 싶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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