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
[매거진 esc] 금태섭, 사랑을 건너다
가까운 시일 안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오늘 바로 조상님들을 만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뵐 낯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후손에게 적어도 나보다는 큰 키를 물려줬기 때문이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된 큰아이는 내 키를 훌쩍 뛰어넘었고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도 작은 키는 아니다. 아이의 돌상에 실, 연필, 지폐와 함께 긴 다리가 놓인다면 무엇을 선택하기를 원하겠는가. 그렇다. 돈은 벌 수 있고 명예도 노력하면 얻을 수 있겠지만 늘씬한 몸매는 부모 잘 만나야 되는 것이다. 나는 애들한테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의 그런 엄청난 공적(?)에도 불구하고 애들은 존경은커녕 별 관심도 없다는 데 있다. 도대체 아이들의 마음에 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함께 보려고 애써 봤고 그 나이 또래에게 인기 있는 연예인들의 이름을 열심히 외워서 대화에 끼려는 노력도 해봤다. 돌아온 것은? 처참한 좌절뿐이었다. 같이 놀러 다니면서 친구처럼 쿨한 아빠가 되어보려는 시도는 멀뚱멀뚱한 시선에 무너졌고, 인자한 목소리로 소녀시대의 태연이 더 예쁘냐 아니면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더 예쁘냐고 물었을 때는 거의 변태 아저씨 취급을 당했다. 이런 무안을 한 번쯤 당해보지 않은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은 부모 마음이라도 이런 취급이 계속되면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 한들 상대방의 반응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쏟아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최소한 가끔씩 스트레스라도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된다. 애정이 넘치는 부부나 커플도 어쩌다 한 번은 티격태격해야 깨지지 않는 법이다. 다행히 우리 조상님들은 부모가 마음껏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날을 일 년에 하루 마련해 주셨다. 바로 추석이다. 그날만은 일가친척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얼마든지 자식들을 망신 줄 수 있다. 직접 나설 필요도 없다. 말을 하지 않아도 이모님·고모님들이 해결사로 나선다. 지난 학기 성적에서부터 여자 친구는 있는지에 이르기까지, 엄친아·엄친딸과 비교되면서 아픈 곳을 찔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추석 때 친척들한테 당하는 것이 괴롭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추석은 자식들이 부모님 앞에서 한번 당하라고 조상님들이 만드신 날이다. 일 년에 하루쯤 그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이모님들한테 혼이 나겠지만 엄마를 생각해서 꾹 참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추석 하루만이라도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께 즐거운 날이 되기를 바란다. 금태섭 변호사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