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01 20:40
수정 : 2009.07.05 13:18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손민한이 개인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스무 번째 기록이다. 특히 21세기 들어 꼴찌만 네 번, 7위를 세 번 기록한 팀의 암흑기를 딛고서 일구어 낸 성과라, 손민한의 이 100승은 더욱 값지다.
생업이 생업이니만큼 다른 분야에서 경지에 도달한 이의 모습을 글쟁이의 일에 빗대는 습성이란 어찌할 수가 없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전국구 에이스’ 또는 ‘민한신’으로 추앙받는 손민한의 플레이가 그렇다. 별 의미 없는 장담이지만 이 투수가 일찍부터 공이 아니라 펜을 들었다면 굉장한 문장가가 되었을 것이다. 다 잡은 경기를 시원하게 말아먹는 마무리 투수들에게 흔히 ‘작가’라는 칭호를 선사하기도 하나 물론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다.
10년 가까이 글을 써 오고 있지만 생각을 문장으로 옮겨 담는 일은 여전히 골치다. 통제가 안 되는 어휘들은 머리보다 먼저 손에서 뛰쳐나오려 하고 기껏 나온 문장은 잔뜩 어그러져 있기 일쑤. 이러니 스트라이크 존에 걸릴까 말까 한 아슬아슬한 위치에도 마음먹은 대로 공을 찔러 넣는 손민한의 컨트롤이 부러울 수밖에. 완급 조절은 또 어떤가. 별로 빠르지도 않은 직구와 그보다 더 느린 직구, 홈 플레이트에서 뚝 떨어지는 포크볼만 가지고도 타자들의 눈을 어지럽혀 삼진을 뽑아내는 재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생각이 앞서 할 말만 잔뜩 쏟아내느라 글을 산으로 보낸 기억도 부지기수였던 까닭이다. 우직하게 몸 쪽 직구만 던져대다가 큰 것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투수에게 욕지거리를 날릴 자격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류현진이나 봉중근, 김광현처럼 저돌적인 젊은 재능들에 대한 찬탄이야 덧붙일 필요도 없다. 블로그들만 기웃거려 봐도 날카롭게 벼려진 문장을 구사하는 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하지만 나는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참 성의 없이 던진다’고 혀를 찰 만큼 헐렁한 손민한의 투구 폼에 눈길이 더 간다. 우습게도, 나이를 먹어버린 탓이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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